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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사건, 온두라스에서 살인 누명을 쓴 한국 여성…사건 경과는?

시사

by 편집국장 2009. 10. 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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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누명을 쓰고, 온두라스에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한국인 여성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23일, 온두라스에서 네델란드인 여성 한 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여성이 사망한 숙소에는 외국인 남성 한 명과 한국인 여성 한 명(한지수)이 묵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건 발생 몇 달 후 사건이 종결된줄 알았떤 한국 여성은 이집트에서 인터폴에 의해 살인용의자로 체포되었습니다.

종결된 사건을 재조사하게 만든 네덜란드 정부와 달리 수수방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한지수씨와 그녀의 언니, 그리고 친구들은 네이트판 등 인터넷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정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다고 하는데 일이 이 지경이 되기까지 무얼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군요.

인터폴에 수배되었다면 출국 당시에도 기록이 나왔을텐데, 왜 자세히 조사를 안 했는지도 의문이고,
이집트에서 체포되어 온두라스로 압송되는 과정에는 무슨 역할을 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출처 : 고재열 기자님의 독설닷컴, 한지수씨 블로그, 네이트판


아래는 한지수씨가 직접 작성한 사건 경과입니다.
 
안녕하세요, 한지수입니다.

정말 많은 분들께서 도와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몸은 갇혀있는 상태지만 마음은 펄펄 기운차게 날고 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걸 이렇게 배우는구나 생각이 듭니다.

이집트에 감금되었던 그 순간부터, 어리석은 제 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왜 신은 나를 이 세상에 보낸 것인지 의문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가족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모든 분들이 저의 가족입니다. 지금 진 이 빚은 제가 이 생에 다 갚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라도 갚겠습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저에게 ‘사랑’이라는 주제로 인생을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기운 내라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주소 스크랩 해서 주변 사람들께 알리시는 분들,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 격려 전화해주시는 분들, 문자 한 통 보내주시는 분들, 마음속으로 기도해주시는 분들, 이 글을 한번이라도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저에게는 진짜 천사입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저도 한국에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될 수 있는, 성실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꿋꿋하게 견디겠습니다. 이것이 설사 몇 십 년이 걸린다 하더라도, 건강한 신체와 성숙해진 정신으로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굳은 마음 먹고 있습니다. 눈물이 나더라도 눈 부릅뜨고 꿀꺽 삼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제 인생에서 저의 영혼이 이렇게 충만했을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제 영혼을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이 울컥 합니다. 더이상 쓰면 글을 쓰지 못하고 울어버릴 것 같아서 감사의 말씀은 한국에 돌아가서 하겠습니다.
 
언니가 올린 글이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있고 누락된 부분도 있어, 제가 다시 글을 올립니다. 여러 분들께서 의문을 주셨던 것에도 답변이 될 것입니다. (글을 조금이라도 짧게 하고자 단순 서술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말이 짧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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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물 관계

댄-나(한지수): 강사와 수강생. 나는 온두라스 로아탄 섬에 다이브마스터 및 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08년 6월 10일 입국하였고, 미리 연락한 다이빙 샾에 갔다. 다이빙 샾에는 7명의 강사가 있었고 댄은 그 중에 한 명이었다. 나는 샾에서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밟으며 강사들(댄 포함)의 코스를 보조하였다. 난 원래 샾 근처에서 다른 다이브마스터 과정에 있던 여자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8월 초가 되자 그 룸메이트들이 모두 그 과정을 끝내고 출국하였다. 나는 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8월 말까지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댄이 사는 집에 빈 방이 있어, 돈을 아끼기 위해 댄이 사는 곳으로 이사하였다. (8월 15일)

댄-마리스카: 마리스카가 다이빙 코스를 밟을 때, 댄이 일부를 가르친 것으로 알고 있다.

나(한지수)-마리스카: 사건 전날 이전에는 만난 적이 없다. 강사 과정을 밟느라 샾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3. 08년 8월 22일 사건 전말

나는 다이빙 샾 근처에 있는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후 10시-11시 경, 댄이 여자들 몇 명(마리스카 포함)과 바에 왔다. 그때 마리스카를 처음 보았고, 서로 통성명을 하였다. 바에는 사람이 많았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술을 마셨다. 밤 12시-1시 경, 나는 바를 떠나 집으로 향하였고, 댄과 마리스카 역시 바를 떠나고 있음을 보았다. 당시 나는 취해있는 상태였고, 마리스카 및 댄도 퍽 취해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거리이다. 내가 집에 도착한지 거의 1분도 되지 않아 마리스카와 댄이 집에 왔다. 나는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한밤중에 자고 있는데 갑자기 우당 탕탕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깨었고, 소변도 마렵고 하여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맞은 편 방문에 댄이 서있었고, 방 사이에 위치한 화장실 문은 닫혀 있었다. 댄에게, “Is she here?” 라고 물으니 댄은 그렇다고 했고, 나는 방문에 기대어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약 1-2분) 화장실 문이 열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마리스카가 앞으로 쿵 쓰러졌다. 팔을 짚지도 않고 무릎을 꿇지도 않고 마치 통나무가 쓰러지듯 정면 낙하 하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놀라서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댄이 마리스카에게 다가가 돌이켜 눕혔다. 눈썹 끝에 찢어진 듯한 상처가 나있었고, 출혈은 심하지 않았다. 댄은 나에게 얼음과 수건을 가져오라고 하고, 동시에 EFR(Emergency First Response-다이빙 관련 응급 구조 서적)책에서 얼마 동안 얼음을 대고 있어야 하는지 찾아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간을 체크하라고 하였다. 그 때가 20분간 대고 있으면 된다고 책에 나와있었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정각이었다. 댄은 마리스카에게, 엄마의 이름이 무엇이냐 물어보았고, 마리스카는 대답하였다. 1부터 10까지 세어봐라 하니, 마리스카가, ‘Dutch or English?’라고 되물었다. 영어로 하라고 하자, 영어로 1부터 10까지 세었다. 마리스카는 I feel so stupid…라는 말을 되풀이 하였고, 우리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는 입 쪽이 아픈 듯 입에 손을 갖다 대었다. 이빨이 약간 깨져있었다. 나는 다른 얼음 팩을 갖다 주었다. 벽에 기대어 앉아있던 그녀를 거실에 있는 소파로 옮기고 댄은 자신도 소파에 누운 뒤, TV를 켜고, 자신이 마리스카를 돌볼 테니 너는 들어가서 쉬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소변이 보고 싶어 화장실을 갔다. 변기에 변이 있는 것을 보고 물을 내리려고 하였으나,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줄이 끊어져 있어 줄을 연결하고 물을 내리고 소변을 보고 방에 들어가 다시 잤다.

아침 6시경, 댄이 나의 이름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지쑤! 지쑤!” 댄의 방으로 가보니 댄의 침대에 마리스카가 벌거벗은 채로 누워있었고, 변이 나온 상태였으며, 눈을 뜬 채로 숨을 헉-하고 들이쉬고 다시 헉-하고 들이쉬기를 늦은 템포로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목 주변에 붉은색 점들이 보였다) 댄은 매우 당황한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난 이런걸 본적이 없다. 얘가 내 침대에 변을 보았다. 가서 도움을 청해라’고 외쳤다. 옆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고 대답이 없자, 아랫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그 사이 위층에서 옆집 사람이 깨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도움을 청했다. 아랫집에서 대답이 없어, 건너편 주유소로 갔다. 주유소에 있던 사람들에게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했고, 그 중 몇 명과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댄은 방바닥에서 마리스카에게 CPR(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댄과 옆집 남자가 마리스카를 들어 옆집 남자의 트럭으로 옮겼다. 트럭에는 매트리스가 놓여져 있었으며 나는 마리스카의 옷가지를 들고 댄과 함께 트럭 뒤에 탔다. 병원까지 가는 동안, 댄은 계속 CPR과 인공호흡을 하였고, 댄이 지치자 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 병원에 도착하여 마리스카는 응급실로 옮겨지고, 댄은 어떤 방으로 들어가서 연락처를 주고 왔다고 하였다. 의사에게 이런 저런 것을 물었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병원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여 밖으로 나갔고, 얼마간을 서성이다가, 집으로 향하였다. 집에 돌아오니 창문이 열려 있었고, 댄이 옆집 여자에게 청소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옆집 여자가 뭐라고 대답하였는데 나는 정확하게 듣지 못하였다. 댄이 청소를 하기 시작하여 나도 도왔다. 댄은 변이 묻은 이불을 씻었고, 나는 토사물이 담긴 냄비를 씻었다.

약 8시경, 다이빙 샾으로 함께 갔고, 다이빙 샾 매니저에게 사실을 알렸다. 다이빙 샾 매니저는 전화를 통해 (그가 걸었는지, 걸려온 것인지 알 수 없다) 마리스카의 사망 소식을 들었고, 그것을 댄에게 전달하였다. 얼마 후, 경찰이 댄을 데리러 왔다.


4. 사건 이후

댄은 구속되어 로아탄Roatan의 경찰서에 있는 감옥에 수감되었고, 나는 당일 날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하였다. 26일, 나는 강사 시험을 보러 옆 섬(Utila)로 갔는데, 나의 Course Director-강사의 강사-가 댄의 변호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로아탄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였다. 어쩔 수 없이, 당일 날 전용 비행기를 타고 로아탄 섬으로 돌아와, 댄의 변호사를 만났다. 다음 날(27일) 법원에 가서 증인으로서 진술을 하였다. 나의 진술 이외에 변호사 측의 질문과 나의 답변의 다음과 같다.
 

1.     왜 청소를 하였는가?
마리스카가 죽은 지 모르는 상태였고, 방을 치우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2.     누가 청소를 하였는가?
옆집 여자가 청소를 하고 있었고 (당시 이렇게 대답하였는데, 그 이유는 댄이 옆집 여자에게 청소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판단한 것이었다) 댄과 내가 그것을 도왔다.
 

이후, 판결이 어떻게 났는지 직접적으로 듣지는 못하였고, 댄이 부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 달간 온두라스에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댄이 풀려나 온 것을 보았으나 그 다음날(28일) 댄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번 법정 증언으로 인해 강사 시험을 보지 못한 나는, 다음 달에 있을 강사 시험 때문에 한 달을 더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달 동안 계속 온두라스에 있었으나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하였다. 한번, 네덜란드 쪽 대리인이 찾아와서 댄의 행방을 물은 적이 있으나,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한 달 후, 강사시험을 치르고 출국하였다. (9월 말) 출국 시에도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미국에 약 3주간 머물렀다가 한국에서 약 2개월간 있다가 이집트에 다이빙 강사를 하러 12월 말에 출국하였다.


5. 이집트 구속 과정

08년 12월부터 이집트 다합에서 주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스쿠버 다이빙 강습을 하였다. 아무 문제없이 지내다가, 09년 8월 27일 출국을 하고자 카이로 공항에서 여권 심사대에서 기다리는데, 잠시 기다리라고 하였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기다리다가, 공항에 있는 경찰대에 의해 어느 방으로 끌려갔고, 약 서너 시간 이후, 인터폴로 수송되어 Samir Saad 라는 Interpol Inspector를 만났다. 나의 여권 사진이 있는 사건 파일을 가지고 있었고, Daniel Ross와의 관계 및 사건 전말을 물었다. 댄과 나는 다이빙 샾의 강사와 수강생이었다고 대답하였고, 사건 전말을 설명하였다. 그 사람은 나에게 지금 당장 온두라스에 갈 준비가 되어 있냐고 물었다. 나는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지금 당장은 안되겠다고 대답하였고, 영사 연락을 요청하였으나 잠시 후에 다시 만날 때 해주겠다며 거절하였다.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이후, 법원으로 이동되었고, 이동 과정에서 경찰로 추정되는 사람과 수갑을 나누어 찼다. 법원에서는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남자 한 명과, 서기관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있었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남자가 사건 전말을 이야기 하라고 하였고, 나는 영어로 진술을 하고, 그 남자가 아랍어로 번역을 하고, 서기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아랍어로 받아 적었다. 진술이 끝나자 이런 저런 질문-댄과의 관계, 마리스카와의 관계 등-을 하였고 나는 이에 대답하였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아랍어로 된 진술서에 서명을 하라고 하여, 서명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일이다) 이후 Takshibit이라는 감옥으로 수송되어 감금되었다. 누차 영사 접촉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후 감옥에 줄곧 있었고, 어떠한 전화 연락도 허락되지 않았다. 29일 법원을 재 방문하였으나, 이전에 들어갔던 방에 잠시 들어갔다 나왔을 뿐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감옥에 있은 지 닷새쯤 되는 날, 영어를 할 줄 아는 수감자가 들어왔고, 나의 사정을 설명하고 언니의 연락처를 주었다. 수감자가 자기가 곧 나가니, 나가게 되면 언니에게 전화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틀 후인 9월 3일, 감옥으로 누군가 찾아왔다고 하여 보니 주 이집트 대사관의 영사였다. 영사님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9월 10일 영사님께서 재 방문하시어 온두라스로의 송부가 거의 확정적이라고 말씀하셨고, 17일 날 다시 방문하시어 송부일자가 22일 새벽으로 확정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6. 송부 과정

21일 오후 6시경, 감옥에서 나와서 인터폴 본부로 이송되었다. 오후 10시경, 온두라스에서 온 인터폴 두 사람을 만났다. 한 명은 영어를 할 줄 알았고 한 명은 영어를 하지 못하였다. 오후 11시경,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이동 중 수갑을 차는 일은 없었다. 공항에서 영사님을 뵐 수 있었고, 영사님은 출국 때까지 함께 있었다.

현지시각 09년 9월 22일 오전 8시경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나오니 공항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폴 사람들이 주 온두라스 네덜란드 대사를 만난다고 하였다. 네덜란드 대사가 마침 네덜란드에 있어서 만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만날 필요가 없다고 하여, 공항에 있는 작은 방에 가두어졌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인터폴이 대사와 만나고 있었고, 그 동안 영어를 못하는 인터폴은 나와 함께 있었다. 정오 경에, 네덜란드 대사가 내가 있는 방으로 왔고, 인사를 나누었다. 대사는 나에게 아직 댄과 연락을 하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가끔 메신저로 연락할 수 있었다고 대답하였다. 대사는 인터폴에게 내가 한 이야기를 다시 강조하여 이야기 하였다. 대사는 파나마 시티에 도착하면 자신의 동료 Peter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인터폴에게 이야기 했다. 또한, 지금 온두라스의 정치 상황으로 인해 온두라스의 모든 공항이 정지 상태라고 말하였다.

파나마 시티에 도착하여 공항에서 Peter를 만났다. 워싱턴 DC에서 근무하고 있고, 네덜란드 대사관에 소속되어 있는 경찰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자신의 관할 지역은 Nicaragua부터 Canada 까지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원래 예정이었던 테구시갈파(온두라스 수도) 공항이 열리지 않아, 산 살바도르로 목적지가 변경되었다. 온두라스 인터폴 두 명, 네덜란드인 Peter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사람이 된 일행은 산 살바도르로 향하는 비행 편에 올랐다.

산 살바도르에 도착하니 현지 인터폴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짐을 찾아서 나가려는데, 나의 짐이 분실되었다. 나의 짐은 개인 여행용 가방과, 감옥에서 쓸지 몰라 싸놓은 매트리스였다. 다른 사람의 짐은 모두 찾았으나, 나의 짐만 분실되었다. 산 살바도르의 인터폴이, 염려 말라며 자신이 찾아서 테구시갈파로 보내주겠다고 하였다. 당시 짐 표는 인터폴이 가지고 있었고 분실 신고 및 어떠한 서류도 작성하지 않았다. (현재로서 짐을 어떻게 찾을지도 막막한 상황이다) 그들은 호텔로 향하고, 나는 경찰서로 가서 경찰서 바닥에 그쪽에서 제공해준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잤다.

23일 오전 7시, 현지 인터폴의 차로 엘살바도르-온두라스 국경으로 향하였다. 온두라스에 도착하여 온두라스 인터폴의 차로 바꿔 탔으며, 온두라스의 공항이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일 로아탄 섬에 도착할 수 있도록 비행 편을 예약했다고 하여, 온두라스 영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동행하던 인터폴은 2시 30분 비행기라고 이야기 하며, 2시에 공항에서 보자고 하였다. 인터폴 사무소를 들를 것이라고 하였던 인터폴의 말과는 달리, 바로 테구시갈파 공항에 도착하였다. 약 2시경, 영사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들은 나에게 빨리 탑승을 하라고 재촉하였다. 나는 영사님을 보고 가겠다고 버텼고, 결국 2시가 약간 지나 영사님께서 변호사와 함께 공항 로비에 도착하셨다. 변호사가 로아탄까지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으나, 비행기에 자리가 없어, 차일 오전 비행기로 올 것이라고 하였다.

오후 네 시경, 로아탄에 도착하자, 작년에 나를 찾아왔던 네덜란드 측 대리인, 현지 경찰 및 취재진 등이 공항에서 대기 중이었다. 경찰차로 Coxen Hole 경찰서로 이송되어왔고, 사무실에서 잠시 대기하였다. DGIC(온두라스 경찰의 종류로 추정)의 Sandra라고 하는 여성이, 자신이 인권 보호를 맡고 있다고 하였고 (작년에 Dan이 수감되었을 때에도 본적이 있음) 내가 독방을 쓰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자신이 힘써보겠다고 하였다. 컴퓨터 및 책상이 몇 대 있는 사무실에 매트리스를 놓고, 그 방에 머무르라고 하였다. 저녁 7시경, 검사 및 네덜란드인 (Peter와 대리인 Marco De Moor) 이 와서 판사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내가 왜 판사를 보러 가냐고 묻자, Peter는 “Just say hello”라고 대답하였다. 판사의 방에 도착하니, 판사가 지정한 변호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영어를 하지 못하여 네덜란드인Marco가 통역을 하여 주었다. 나는 아직까지 상황 판단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내일(24일) 1차 Hearing 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이건 그 전에 하는 절차인가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판사는 나에게 변호사가 언제 오냐고 물었고, 나는 내일 오는데 시간은 확실하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나에게 주소 및 부모 성명을 물은 후 절차를 진행하였다. 검사 및 변호사, 판사의 진술이 모두 끝나고, 나는 판사에게 내일 1차 Hearing 이 있냐고 물어보니, 그건 방금 끝났고, 28일 오후 1시 30분에 2차 Hearing 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제서야 나는 방금 끝난 그것이 1차 Hearing 임을 알았다. 나는 속았다는 생각에 화가 났고, 판사 방에서 나와서 억울해하였다. 네덜란드인의 전화를 빌려서 영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검사 중 한 명이 팔을 잡아 끌며 가자고 하자, 내가 팔을 놓으라고 강하게 말하였고, 그 때 옆에 있던 여 검사가 뭐라고 스페인어로 나에게 소리를 쳤다. 나는 영어로 말하라고 되받아 쳤다. 그 여 검사는 경찰서까지 와서 내 방으로 들어와 매트리스 및 담요를 빼내라고 하였다. 그날 차가운 타일 바닥에서 가방을 베개 삼아 잠을 잤다.


7. 2차 Hearing 2009년 9월 28일

# 검사 측 증인: 일반인 총 3명, 부검 전문의 1명

  1) 주유소에서 도와주러 온 남자: 세 명 중 제일 늦게 현장에 도착한 사람
증언: 지수가 도움을 청하러 주유소에 와서, 지수와 함께 집으로 갔다. 내가 도착했을 당시 이미 마리스카는 숨이 멈춰있는 상태였으며,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3~4시간이 경과한 상태였다. 집은 이미 청소된 상태였다.
변호사: 사망 후 3~4시간 경과를 주장하는 이유는?
증인: (마리스카의) 대변이 굳어있었고 손톱 색깔이 푸른색으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2) 옆집 아줌마: 두 번째로 현장에 도착
증언: 집에 가 보았을 때, 댄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고 마리스카가 헉~ 하고 숨을 쉬었다. 대변의 상태는 유동성이 있는 상태였다
 

3) 옆집아저씨: 첫 번째로 현장에 도착
증언: 댄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고, 매트리스를 가지고 내려갔다. 대변은 어두운 색이었다
 
(의사도 아닌 다이빙 강사인 첫 번째 증인의 증언은 전혀 신빙성이 없음. 청소가 되어있다고 주장한 것은 옆집아저씨가 와서 매트리스를 가지고 내려간 다음이었기 때문. 대변의 상태 역시 세 명의 진술 모두 제 각각임.)
 

4) 부검 검시관
증언: 목구멍에 피가 맺혀있고, 온몸에 멍이 있는 자국을 보아 이것은 타살(Homicide)이다.
검사: 한 사람이 한 일인가, 두 사람 이상이 가담한 일인가?
증언: 두 사람 이상이 한 일일 수 있다.
>> 검사 측 주장: 부검 결과가 타살로 나왔고, 두 사람 이상 가담했으니 현장에 있었던 한지수가 혐의가 있다.
 

# 변호 측 증인: 부검 전문의

  1) 작년에 작성된 1차 보고서와 이번에 작성된 2차 보고서의 사인이 다르다. 이건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어 재 부검하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첫 번째 부검보고서는 사망원인을 충격으로 인해 뇌가 부풀어서, 두 번째 부검보고서는 사망원인을 목이 졸려서 라고 되어 있는데, 는 해당 기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2) 외흔은 없고, 내부 출혈만 있는데, 목이 졸려 죽은 것만 사인으로 보는 것은 편파적이다. 목구멍 및 위 식도 모두 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3) 엠피타민이 검출되었는데, 그 함량은 표기되어있지 않다.

  4)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데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았다.

>> 변호 측 주장: 위와 같은 이유로, 검사 측에서 제시한 부검 결과서 자체의 신빙성이 없다. 검사 측은 지금 (네덜란드의) 압력을 받아, 억지 증거를 잡아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지수는 당장 석방되어야 한다.
 

# 판결 (2009년 8월 29일)
변호 측에서 제기한 부검 결과서에 대한 논의는 실제 재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한지수는 다음 재판까지 구속처분을 내린다.
 

8. 판결 이후

28일 진행된 2차 Hearing은 판결이 나지 않은 채 Closing Argument까지만 하고 끝이 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변호 측은 웃고 있는 반면, 검사 측은 표정이 밝지 않았다. 나도 옆에서 통역을 통해 다 듣고 있었기에 우리 쪽이 우세함을 느꼈다. 아버지와 함께 웃으며 경찰소로 돌아와, 에피소드처럼 이야기를 했다. 다음 날 아침,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해보니, 변호사는 어두운 목소리로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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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차 Hearing에서 우세한 위치를 차지하고도, 석방이 불가하다는 판결을 받은 저와 아버지의 심정은 참담. 그 자체였습니다. 한 시간 전만 해도 모든 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짐까지 다 싸놓았던 저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멍하게 앉아있었습니다. 갑자기 무엇이 동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불현듯, 이렇게 있으면 이 일이 정말로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니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 부당함을 알려야 한다. 이렇게 있으면 정말 당하고 만다. 여태까지 그렇게 당해왔다. 그렇게 언니의 노력이 시작되었고, 지금 이렇게 많은 분들께 알려 도움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더욱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잘 될 거야라는 맹목적 희망을 갖고 손을 놓기 보다는 잘 되게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는 30년 실형을 상상합니다. 넋놓고 있으면 어느 순간에 감옥에서 또 다른 옥중 편지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 쓰는 이 편지가 마지막 편지가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간절하게 부탁 드립니다. 부디,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옆집 이웃인 것처럼, 아는 동생인 것처럼, 오랫동안 연락이 안되었던 친구인 것처럼 관심을 가져 주세요. 이렇게 만들어진 인연은, 제가 한국에 가면 갚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시판 한 줄로 끝나지 않고, 찾아 뵈어 밝고 건강한 웃는 모습 보여드리고 음료수라도 한잔 마시면서 감옥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해드리겠습니다.

꼭. 한국에서 뵙고 싶습니다……
 

온두라스 로아탄에서, 한지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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