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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개수를 계산 하는 사람, 아르키메데스

역사&문화/Talk to History

by 편집국장 2017. 12. 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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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 개수를 계산 하는 사람, 아르키메데스

 아르키메데스는 가까운 친척인 사라쿠사의 하에론 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게 지구 밖 어딘가에 발 디딜 곳과 충분한 길이의 막대를 준다면 지구를 움직여 보겠다."고 뽐내며 말해였다. 하에론 왕은 크게 놀라 실제 실험을 통해 작은 힘으로도 무거운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여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르키메데스는 병기고에서 배를 하나 골라 거기에 많은 사람과 화물을 싣게 하고는 혼자서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그저 도르래에 걸린 밧줄을 끌어당기기만해서 배를 끌어올려 바다에 띄웠다.      -플루타르코스, 「전기」



 아르키메데스는 헬레니즘 시대의 천재 과학자로, 윗글에 나온 '도르래의 원리' 외에도 '부력의 원리'를 비롯한 수많은 과학적 업적을 남겼습니다. 또 조국 사라쿠사가 로마의 침략을 받자, 아르키메데스는 투석기, 기중기 등 지렛대를 응용한 신형 무기를 만들어 내기도 했죠. 하지만 사라쿠사는 신흥 강국 로마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함락되는데, 그 날도 아르키메데스는 뜰의 모래 위에 도형을 그리며 기하학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사람의 그림자가 비치자 그것이 로마 병사인 줄도 모르고 "비켜! 내 도형이 가려지잖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에 화가 난 로마 병사는 아르키메데스를 몰라 보고 그의 목을 쳤는데, 평소 아르키메데스의 학식을 존경하던 로마의 장군이 이 사실을 안타깝게 여겨 아르키메데스의 묘비석에 죽는 순간까지 그가 연구하던 도형을 그려 주었다고 합니다. 죽는 순간까지 연구에 골몰했던 아르키메데스 같은 과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헬레니즘 시대에는 자연과학이 크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부력의 발견

 아르키메데스는 천문학자 피라쿠스의 아들이었다. 그가 이집트로 유학을 갔다가 돌아와서 피라쿠스가 왕에게 아르키메데스를 인사시키러 갔다. 그 때, 왕은 새로 만든 왕관이 순금으로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다른 물질과 섞였는지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왕의 이 문제를 풀어달라고 아르키메데스에게 부탁을 하자, 아르키메데스는 하루나 이틀 동안 시간을 . 피라쿠스가 아르키메데스에게 목욕이나 하러 가자해서 그들은 목욕탕에 갔고,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 속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목욕탕 물은 넘치지 않는데, 자기의 목욕탕물은 넘치는 것을 보고,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든 아르키메데스는 유레카("알았다" 뜻의 그리스어)를 외치면서 몸으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아르키메데스를 보고 정신병자라고 놀렸지만, 아르키메데스는 듣지 못했다. 문제를 풀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왕에게 간 아르키메데스는 왕관을 물 속에 넣고 물이 넘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왕관을 저울에 놓고 금화 몇 개와 숫자가 같다는 것을 증명한 다음 발견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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