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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해저터널, 뚫어? 말어?

시사

by 편집국장 2017. 11. 2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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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해저터널은 총길이 209.8㎞, 최대수심 192m, 전체공사비는 약 11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며,토론자로 나선 일한터널연구회 후지하시 겐지 상임이사 역시 건설비용은 10조엔, 공사기간은 최근 터널기술 발전을 고려할 때 약 10년 내외로 추정된다며 적극추진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전 통일원 장관인 허문도씨는 "한일 해저터널이 동아시아 경제를 이끄는 대동맥의 인프라이며, 완성되면 동아시아의 지역통합의 문을 여는 것이라 평가를 했으며, 성장세로 볼 때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능가하는 공동체로 발전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도 덧붙여 “한일터널은 양국 국민 간 신뢰관계 구축 없이는 엄두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이전에 마음의 문제이고 역사·문화의 문제”라며, 최대 난제는 한국민의 정서임을 지적했다고 합니다.

 

일제시대의 해저 터널 구상

일제시대일본에 의한 터널 계획은 일본규슈에서 출발하여 한반도를 통과하는 동아시아 종단 철도로서 구상되었으며, 1930년대에 세워진 '동아시아 종단철도'에 대한 구상이 시작이다. 이것은 당시 일본 지배하에 있던 한반도부산을 기점으로 하여, 경성(현재 서울)을 지나, 안동(현 중국 단둥)에서 당시 만주국 영토로 진입, 선양을 지나 중국 영토에서 베이징, 난징 등을 경유하여 베트남의 하노이, 사이공, 프놈펜, 말레이 반도 까지 이어지는 약 10,000km의 노선으로 구상되었다.
또한 1940년대도쿄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탄환열차 계획이 세워진 이후, 1942년에 동아시아 교통학회가 설립되고 일본에서 쓰시마 섬을 거쳐 부산과 연결되는 해저 터널을 건설하여 위에서 설명한 동아시아 종단철도와 연결하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에서의 기점은 시모노세키, 하카타, 카라츠 등이 유력하게 검토되었지만, 확정된 사항은 없다.
이 같은 계획은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함으로서 좌절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구상

1980년대 부터, 한국에서 한일 해저 터널(일본에서는 '일한터널'이라 부른다)을 개통하고자 하는 의견이 일부 단체에서 제시되었다. 그 이후에 일본에서도 시민 단체 등이 한일 해저터널 추진 단체를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경로는 일제시대의 해저 터널과 비슷한 노선으로, 사가 현에서 쓰시마 섬을 지나 부산 또는 거제도를 연결하는 구상이 세워져 있다. 이 구상은 자동차 도로와 철도를 같이 건설하는 것을 전제로한다. 공법에 있어서는 해저 지층을 뚫는 방법과 콘크리트로 만든 케이슨(Caisson)을 일정한 해저 심도에 늘어놓아서 구성하는 '해중 터널' 방식이 제안되었다.
또한 한일 양국 정부 모두 현재는 한일 해저 터널은 "앞으로의 계획"이라고만 언급하는 정도이고, 본격적인 착공을 위한 계획은 없다.

 찬성과 반대
찬성하는 쪽은 한일간의 우호 증진이나, 또는 철도가 한반도를 경유하기 때문에 유라시아 대륙 각지를 통과하는 물류 허브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추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반대하는 쪽은 항공편을 이용한 수송이 주류인 이 시대에 큰 예산을 들여서까지 이런 터널을 건설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육상을 통한 대륙 진출을 꿈꾸는 일본에게만 좋은 일을 해 주는 꼴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 또한 있으며, 국방에 관계된 문제와 무역관세 등의 문제가 주요한 반대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동북아 물류중심지, 유라시아 철도건설을 표방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한일 해저 터널을 설치하면 한국은 간이역이 된다는 주장이 절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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