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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의 역할, 어떻게 변했나?

역사&문화/Talk to History

by 편집국장 2009. 6. 2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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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문점”은 행정적으로는 남한과 북한의 어느 행정구역에도 소속되지 않는 특수지역이다. 1953년 7월 이곳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된 뒤 UN측과 북한측의 ‘공동경비구역’이 되었으며, 그 해 8∼9월에는 1개월에 걸친 포로교환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주로 휴전을 관리하는 장소로 이용되었으나, 1971년 9월 20일 열린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을 계기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장소뿐 아니라 남·북한간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 및 남북을 왕래하는 통과지점으로도 활용되어 왔다. 약 800m의 정방형 지역으로서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양측의 경비병들이 서로 오갈 수 있었으나, 이 사건 이후 공동경비구역에서 분할경비지역으로 변모하여 서로 상대방의 지역으로 들어갈 수 없게 하였다.


  판문점에는 회담장 이외에도 남측의 ‘자유의 집’, ‘평화의 집’이 있고 북측의 ‘판문각’, ‘통일각’ 등이 있으며,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다. 자유의 집은 남북 적십자 연락관실로 쓰이다가, 1998년 새로운 자유의 집이 건축되어서 남북 회담 및 교류 지원과 남북간 연락 업무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평화의 집은 군사회담을 제외한 남북간 민간회담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북측의 판문각은 북한 경비병 사무실 및 남북 회담 북측 대표 대기실로 사용되고, 8·15범민련 대회 등이 열리고 있다. 통일각은 남측의 평화의 집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1953년 포로 송환이 있었던 다리로서, 이 다리를 건너가면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동안 판문점에서는 1976년의 8·18 사건, 이 사건으로 미군이 벌인 폴 버니언 작전 등이 있었으며, 1990년대 들어와서는 북한군의 무장병력 진입 등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어왔다. 현재 판문점의 경비책임은 UN사령부가 맡고 있으나 한국군에게 이양 될 예정이다.

※ 국가기록원에서 제공받은 글로 내용이 The Neo Renaissance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내용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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