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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정전협정, 그 배경은?

역사&문화/Talk to History

by 편집국장 2009. 6. 2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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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정전’은 휴전의 전제로서 짧은 기간의 적대 행위 중단을 의미한다. 반면 ‘휴전’은 전쟁의 중단을 의미하지만 전쟁원인의 해결에 합의하지 않은 채 전쟁을 종료한다는 점에서 「평화조약」과는 구분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휴전협정」이 전투행위의 일시적 중단뿐만 아니라 전쟁의 재발방지 조치 마련 및 궁극적 포기까지 내포한 개념이 되었다. 현재 북한은 휴전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정전이라는 용어만 사용하고 있다. 현재는 대체로 평화체제가 완전히 구축된 '전쟁의 종식'과의 차이만 구별된 채 휴전 혹은 정전이라는 개념이 중복되어 사용되고 있다.

  UN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중국은 한국전쟁의 참전을 결정하였고, 이로 인해 한국전쟁의 성격은 완전히 변모되었다. 즉, 관련당사국간의 전쟁에서 이데올로기간의 전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또한 중국군의 참전과 전선의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서 어느 한쪽이 군사적으로 완전히 승리할 가능성은 요원해졌다. 실제로 1951년 초 전선은 다시금 38선 부근으로 고착되었고, 상대방 진영을 돌파하기 위한 작전보다는 진지방어전에 주력하게 되었다. 당시 중국군 사령관이었던 팽덕회도 “한국전쟁에서 신속한 승리가(速勝) 불가능하다”라고 인식했고, 맥아더 역시 중공군 개입이후 UN군은 전혀 ‘새로운 전쟁’과 마주하게 되었음을 인정하였다. 당시 미국은 맥아더의 중국 본토까지를 포함하는 ‘확전’ 주장과 트루먼을 중심으로 한 ‘휴전’ 파간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미국에서의 ‘확전’과 ‘휴전’ 논쟁은 맥아더의 해임을 가져왔고, 맥아더의 뒤를 이은 리지웨이 사령관은 북진에 대한 제한을 명령하면서 제한적인 전쟁만을 지시하였다. 양측의 군사적 승리에 대한 불확신, 미국 내부에서의 전쟁에 대한 전략 수정, 소련의 긴장 완화에 대한 요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정전이 제의되었고, 2년여의 지루한 공방 끝에 불안정한 「정전협정」이 조인되었다.


※ 국가기록원에서 제공받은 글로 내용이 The Neo Renaissance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내용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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