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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22)
조선시대의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조선시대 성군을 꼽으라면 대부분 조선 초기 문화와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전성시대를 꽃피게 한 세종과 조선후기 합리적 문화로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의문의 죽음으로 사라져간 정조 그리고 효심이 깊고, 타고난 재능과 능력을 갖췄으나 역시 일찍 생을 마감한 인종을 들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요즘 말로 하면 막장, 그 시대의 최악의 임금을 꼽자면,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이후 폭군으로 변한 연산군, 조선 최악의 전란에 아무런 준비도 못 하고 있다가 전란이 일어나자 궁을 버리고 도망가기 바빴으며 그런 전쟁을 이겨낸 장수와 흉흉한 민심을 수습한 세자를 오히려 의심하고 견제한 선조, 그리고 스스로 반정을 일으켜서 왕이 된 후 삼전도의 치욕을 맞이한 인조가 대표적입니다.

 역사는 승자의 것, 기록자의 것이기 때문에 인조 재위 이후 역사 속에서 광해군은 연산군과  동급의 패륜을 저지른 조선 최악의 군왕으로 기록되고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마치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박정희, 이명박을 비판하고 외면하는 것이 자기 부정이기에 군부 독재정권을 포장하고 미화시키는 것 같이 인조와 인조 이후의 왕들로서는 정통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더구나 조선은 성리학을 기초로 한 명분을 중시하는 왕조) 광해군을 폭군으로 몰아 인조를 미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듯이 광해군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시절이 길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음) 400여 년 전 광해군과 인조, 그들은 지금의 노무현과 이명박과 너무 닮아있습니다.
 

광해군, 전란으로 파탄 난 나라를 물려받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후 도망간 임금과 문무백관 그리고 사대부들에 대한 백성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탄 궁궐은 왜군이 아닌 백성이 불 지른 것이었고, 피난 중인 선조에게 비난하고 심지어는 돌을 던지는 경우까지 비일비재할 정도로 극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광해군은 이런 혼란의 시대에 세자로 책봉되어 맹산, 곡산, 이천 등지를 순회하면서 왜군을 교란시키고 백성을 위무하며 왕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광해군은 적자(왕의 정비 소생)가 아닌 후궁의 소생이었습니다. 정비의 소생이 없던 선조가 즉위 말년시절 51살 되던 해 19살의 정비를 맞이했는데, 그녀가 인목왕후였습니다. 그리고 그 인목왕후로부터 적자가 태어났는데 바로 영창대군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잘 수습하고 나가고 있었음에도, 대신들의 흔들기와 선조의 우유부단함 등으로 인해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결국 선조의 승하로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조의 광해군 폐위 이유 중의 하나인 형제들을 죽이고 대비를 폐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아직 국난으로 나라가 혼란스럽고 자신은 적자가 아닌 상태에서 왕권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되었는데, 분명 동복형제와 이복형제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광해군은 신하들의 주청을 극구 반대했다고 하지만 결국엔) 잘못이긴 하지만, 조선 초기 태종과 그리고 세종의 아들 세조도 이복형제와 동복형제를 제거한 후 왕권을 강화함으로써 오히려 훌륭한 왕으로 추존받고 있음을 볼 때 억울한 측면도 강합니다. 더구나 영조의 경우엔 친아들 적자인 사도세자를, 인조의 경우도 친아들 적자인 소현세자에 대한 독살 가능성이라는 큰 패륜을 저지른 것을 봤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계비인 인목대비를 폐한 것으로 패륜아로 낙인찍혔지만, 계대비인 정순왕후와의 갈등으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정조나 조선 최악의 왕비로 꼽히는 문정왕후를 계비로 두고 마찬가지로 독살설로 세상을 떠난, 살았으면 조선의 또 하나의 성군으로 기록되었을 인종을 생각한다면 계비를 두고 정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했을지는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인조반정과 그 이후 인목대비의 행동을 본다면)

 오히려 광해군 시절 민심은 광해군으로 향해 있었고 폐비 사건은 궁중에서 자주 일어났던 왕비나 세자빈의 폐비 사건 정도로 여겼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노무현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에서 집권하게 됩니다. 물론 IMF라는 큰 산은 김대중 정부에서 끝냈지만 그것을 끝내기 위한 경기부양책이었던 카드남발로 인한 신용대란, 부시의 집권과 이라크 전쟁으로 대표되는 극단적 상황을 통한 유가상승과 북한과 미국 간의 알력다툼 등 어려운 상황에서 집권하게 됩니다.

 세금의 개혁, 국가재정의 확보

 왜란으로 파탄 난 경제살리기와 국가재정 확보를 위해 광해군은 혁신적인 조세개혁인 대동법을 실시하게 됩니다. 이는 백성에게 압박으로 다가온 공납제도의 개혁으로 조세정의를 위한 개혁이었으며 양반 지주층의 반발을 몰고 옵니다.

 또한 조세를 정확히 조사하기 위해서 양전사업(토지조사사업)을 하게 됩니다. 즉, 누가 어디에 얼마의 땅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하여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원칙적으로는 20년에 한 번씩 시행되어야 할 제도였으나 조선왕조 통틀어 4번 정도밖에 시행되지 않은 제도였습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양안을 기록하여 각 관청에 두게 되는데, 지금도 있는 자들이 더 세금을 안 내려는 것처럼 당시도 사대부들은 자신의 이름을 빼버리고 나라에서 주는 녹만 타 먹고 세금은 내지 않아 백성만 세금을 내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양전사업과 대동법 시행으로 광해군은 백성의 민심을 잡게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기득권들의 거센 반발을 받으면서 종부세(종합부동산세) 등의 세금변화와 여당의 삽질과 야당의 반대로 누더기가 되었지만 4대 개혁법안(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등으로 대표되는 개혁적 정책 등을 실시하거나 시도하였습니다.

 한편, 광해군은 국가의 위신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전란으로 소실된 궁궐의 재건을 추진하였으나 오히려 노역에 동원된 백성의 불만과 반정의 또 다른 명분을 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궁궐 재건은 조선의 어느 군주라도 시급히 해야 했을 사안이었기 때문에 광해군으로서는 그것을 나서서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전 정권에서 해결하지 못한,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사패산 터널 문제, 방폐장 문제, 과거사 재조명과 정부차원에서의 사과, FTA 타결(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등의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수도 이전 추진

  정조가 화성으로 수도 이전을 하려 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광해군이 수도 이전을 추진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광해군은 경기도 파주 교하 일대에 신도읍지 건설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왜란 이후 민간에 널리 퍼졌던 풍수지리에 입각한 이씨왕조멸망설(정씨가 왕이 된다는)을 일축시키고 사회 전반을 쇄신하기 위해 추진하려 했으나, 전쟁 후 피폐함과 흉년으로 인해 백성의 불만과 인플레이션 유발을 걱정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광해군이 물러남에 따라 정조의 시도가 있기까지 수도 이전은 거론되지 못했습니다. 수도 이전은 안보를 위해서, 경제를 위해서 긍정적 이유로 추진하려 했지만 당시 상황이 허락지 않았던 것입니다.

 조금 다른 상황이기는 하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져서 각종 문제에 시달리는 수도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도 수도 이전을 추진하였으나, 기득권층의 반발에 헌법소원까지 가는 과정에서 위헌으로 판결이 나 행정수도로 일부 행정기관을 이동하는 선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작은 나라,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빛난 자주적 실리외교

 이미 중화주의로 조선 지배층 사대부들이 받들던 명나라는 나라가 기울어가고 있었고, 반대편에서 서양문물을 흡수한 중화주의자들이 오랑캐로 적대시하던 청(후금)은 커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광해군은 명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또한 청의 도발을 막을 수 있는 양국을 오가는 자주적 실리외교에 힘쓰게 됩니다. 사대주의와 성리학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조선의 왕으로서는 파격적이고 현실적인 감각의 외교가라 할 수 있습니다.

 의리든 명분이든 조선 지배논리에 입각해 명을 돕게 되면, 안 그래도 어려운 전란 이후 나라상황에서 엄청난 국가적 손실과 존망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광해군은 국제정세에 관한 날카로운 분석력과 소신과 결단력으로 외교를 추진했습니다. 당시 신료들 중 외교전문가가 없는 와중에 일일이 외교를 챙겼다고 합니다.

 다급해진 명의 요청에 강홍립을 마지못해 파견하나 이미 청의 누루하치와 비밀조약을 통해 출정 제스쳐만 취하고 항복을 하는 실리적 선택을 하게 됩니다. 즉, 내부의 사림과 명의 명분을 잡고 청과 비밀협약으로 실리까지 챙기는 그야말로 대국 사이의 작은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군주였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끊겼던 일본과의 국교를 회복시켜 남아 있던 왜국과의 전쟁위협을 해소하고 경제적 이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도 실리외교 자원외교로 대표되는 외교를 통해 한반도를 가운데 놓고 벌어지는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특히 북한과 정상회담을 김대중 정부에 이어 성사시킬 정도로 남북관계도 좋게 유지하며 유라시아 경제권, 북한과 연계한 대륙과 이어지는 횡단열차, 북한의 막대한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한반도의 새로운 경제를 위해 또한 평화를 위해 외교를 실행합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원 확보에 힘써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고 무엇보다 세계 어느 곳 모든 지도자들에게 신뢰를 확보하였고, 미국이 서서히 힘이 떨어진다는 것에 대비해 EU로 대표되는 유럽 그리고 중국 등 새로운 쪽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광해군이 외교를 직접 챙긴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 또한 내치는 책임총리제로 총리에게 챙기게 하고 자신은 외교와 굵직한 현안 해결에 힘쓴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28일 Howard W. French라는 기자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노무현 정부의 외교성과에 대해 “동아시아 문제를 다루는 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감당한 역할을 이해할 만한 미국인들은 별로 없다.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 선출된 지도자가 북한 위기에 대해 어떠한 군사적 해결도 반대한다고 천명함으로써 미국 정부는 점진적으로 외교적 수단에 의존하는 것 말고는 다른 실질적인 방안을 강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중략> 미국과 북한은 결국 협상을 통해 핵확산 문제와 궁극적 관계정상화에 관해 보기 드문 외교적 이해에 이르렀다” “그는 변방에 있는 작은 국가의 지도자였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라고 극찬하며 평가 했습니다

 또한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보좌관은 중앙일보에 부시와 노무현의 비화를 밝히며 “한미동맹에 대한 그의 기여는 (친미 대통령이었던) 전두환·노태우 이상이다. 그가 퇴임하는 2008년 2월 현재 한미 동맹은 훨씬 강하고 좋아졌다” 라고 평가하며 “중국이 미국 측에 아시아에서 미국을 주축으로 對中 친미동맹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그 동맹국으로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을 언급하면서 한국만 쏙 뺐다”고 일화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미 관계에 관심이 있는 미국 기자의 눈에나 부시의 고급관료 눈에 비친 노무현 대통령은 강대국 미국에 대해 굽히지 않고 냉온전략을 사용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한미 동맹관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며 그 와중에도 북한, 중국과도 척을 지지 않는 훌륭한 양면외교를 수행했다는 점입니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국익을 지키려다 사대주의자들에게 쫓겨나 일개 군으로 강등되었다가 현대에 와서야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 능란한 양면외교 솜씨를 인정받고 당쟁의 희생자로 불리는 광해군 이혼(李琿)과 노무현, 둘은 그렇게 닮아있습니다.

 세력이 없는 정권

  광해군 정권의 주 인물들은 대북파로 불리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사대부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인물들로, 몰락해가던 서인과 같은 북인에서 갈라져 나온 소북파 등과 적대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참여정부시절 이른바 노무현 세력은 보수세력에는 좌파빨갱이로, 진보세력에는 보수자유주의 세력으로 비춰집니다. 이 당시도 마찬가지여서 대북세력은 명분을 외면한 위험한 세력으로 비춰져, 참여정부 당시 한나라당과 민노당으로 대표되는(지금은 민노와 진보신당으로 나뉘었지만) 극과 극이 참여정부를 헐뜯은 것처럼, 소북과 서인 모두의 공격을 받고 결국엔 반정으로 집권세력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최악의 군주 인조, 그와 닮은 이명박

  앞서 언급한 폐비사건으로 대표되는 패륜과 실리외교란 명분 아래 인조는 스스로 반란을 일으켜 왕위에 오르게 되니 인조반정입니다. (연산군 당시 중신들이 반란 후 추대한 중종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리고는 정통성을 위해 광해군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특히 반정 명분을 강화하기 위해 명과의 외교를 강화하고 청을 배척하게 됩니다. 광해군의 외교를 오랑캐와의 외교로 조선을 오랑캐와 금수가 되게 한 외교였다 비난하고 외교뿐 아니라 모든 정책에서 광해군과 반대되는 정책을 내놓고 추진합니다. (광해군이 틀려야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광해군의 모든 것을 부인합니다)

 400년 후 이 땅에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명박을 대표로 하는 한나라당 정권은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평가하고 ‘Anything But Roh’로 대표되는 참여정부 길게는 국민의 정부와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는 곧 국가적 피해, 국민적 피해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400년 전 백성이 광해군을 인정하고 인조를 무시한 것처럼 지금 이 땅에서 자신들의 손으로 대통령을 만들긴 했지만 다시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이명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독재정권의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IMF를 해결한 민주정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야기하는 상황은 전란을 무사히 복구하고 다시 안정화시킨 광해군을 폭군으로 묘사한 상황과 지금과 닮지 않았습니까?

 비슷한 상황은 외교에서도 발생합니다. 인조는 광해군의 ‘친금배명’ 정책을 빌미로 반정을 했는데 명나라는 찬탈로 인식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명나라는 광해군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조선 조정이 광해군을 비하하는 글을 명나라에 지속적으로 보내자 명나라는 “인조의 마음속에는 비단 광해군뿐만 아니라 중국도 없다. 당연히 선유하여 그 죄를 밝혀 조선 백성들로 하여금 속히 반역의 도적을 토벌하고, 폐주를 복위하게 해야 한다. 설령 조선 백성이 인조를 군주로 삼았더라도 당연히 폐위시켜야 한다”라는 답변을 내립니다.

 이에 인조 조정은 “조선의 200년 사대지성이 모두 허위로 돌아갔다. (중략) 과인은 당연히 명과 협력해 기필코 오랑캐를 무찔러 없앨 생각이다”라는 교지를 발표하고 이에 명나라는 사건진상규명단을 보내고 조선 측은 사신에게 은자 약 13만 냥을 접대비로 준비했지만 명나라 사신들은 성에 안 차 개성의 인삼을 요구했고, 조선 측이 그것을 들어주고서야 상황이 일단락됩니다.

 지금의 상황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이명박 정권은 전임정권 시절 악화하지도 않은 오히려 대한민국 래 미 관료 스스로 가장 좋았다던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외치며 이미 막바지인 부시 정권에 예쁘게 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인조가 접대비에 개성인삼까지 준 것처럼 미국산 쇠고기라는 선물을 안겨준 것은 너무 닮지 않았습니까?

 또한 이후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대외정세를 파악 못 하고 주제넘게 이어진 청을 향한 무시는 지금 북미관계의 회복과 EU의 위상강화, 중국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각종 외교적 결례만을 범하다 북한에 무시당하고, 인조시절 반청을 외친 오버처럼 핵무장까지 언급하는 의원을 가진 정당과 북한을 아직도 탓하는 이명박과 닮지 않았습니까?

 당시 명과 청에 모두 무시당한 인조처럼 지금 미국을 비롯한 북한 중국 러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심지어 제3세계로 불리는 국가들에도 무시당하는 이명박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세계의 흐름을 모르고 망해가는 명국에 매달린 인조와 국제질서의 재편과 미국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흑인은 대통령이 안 될 거라 판단하고 부시와 공화당에 올인한 이명박정권은 쌍둥이지 않습니까?

 광해군이 간신히 회복한 조선은 인조 이후 사실상 끝이 나버렸습니다.(물론 비운의 소현세자나 정조가 제대로 살았다면 모를 일이지, 이들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왕비나 대신 등의 권력이 강화되고 왕권은 축소되는 몰락기의 왕조였습니다.)

 웬 광해군과 노무현 대통령을 비교하느냐 실망하거나 기분 나쁜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역사가 승자의 것이기 때문에 광해군은 묘호를 가지지 못한 것이고 인조는 ‘조’의 시호를 받은 것입니다. (광해군이 묘호가 생기면 인조의 정통성은 물론 이후 군왕들의 정통성도 없어지므로 조선 최고의 왕인 세종도 ‘조’가 아닌 종인데 최악 임금들인 선조나 인조는 ‘조’이므로 묘호로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제대로 평가된다면 광해군은 군이 아닌 ‘조’가 붙어야 하고 인조가 군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묘호는 후대 왕이 정하는 것이므로 안타까운 결과로 지금까지 이어지지만)

 광해군이 최근 들어 재평가 받는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도 언젠가는 나오리라 믿습니다. 또 광해군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서가 아니라 빠른 시일에 나오기를 희망하며 그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Issue & Opinion] - 노무현 전 대통령, 日 독도 도발에 발포 명령?
[Culture & History/Talk to History] - 역대 대통령들의 혈액형은?

※ 저작권에 대한 내용 본 블로그의 공지사항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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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자서전, 가장 인간적인 대통령의 솔직한 이야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여보 나좀 도와줘'는 고백 에세이집입니다. 고졸 출신의 인권 변호사, 우리 나라 최대 재벌의 회장을 혼쭐나게 한 청문회 스타, 그리고 선거에 낙선하고도 민주당 최연소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정열의 사내, 노무현이 고해성사를 하듯 털어 놓는 인생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책입니다. 항상 사람사는 세상을 꿈꿔왔던 그의 삶 속에 숨어 있는 너무나도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Issue & Opinion] - 바보 노무현의 천재적인 발명품
[Issue & Opinion] - 노무현 전 대통령 간지 세트 동영상
[Issue & Opinion] - 인간 노무현을 말해주는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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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의 천재적인 발명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74년 고시생 시절일 때 고안한 개량독서대(실용신안)이다. 오래전에 등록되어 전산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록과 도면 외 기타 세부사항은 알 수 없으나, 책상과 독서대를 일체화 시킨 구조라고 보면 된다. 그 외에 여러가지 기능들이 더 있는 듯 하나, 데이터가 없어 알 수가 없다. 얼핏 보아 개인 보다 독서실이나 고시원 등에 적합해보인다. 이 독서대로 친구들과 사업을 해보려했다는 얘기도 있다.


특허등록번호: 20-0012411-0000
등록일: 1975.09.02
초록: 본 고안은 허리를 굽허가 또는 허리를 굽히지 아니하여도 바른 자세로서 독서 할 수 있도록 책이나 노우트 등을 받쳐주는 받침대의 높이와 각도를 조절할 수 있게 고안한 개량 독서대에 관한 것이다.

출원인, 발명자: 노무현, 노무현
주소: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화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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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만든 미공개 동영상



지난 2009년 5월 28일 새벽에 공개된  '청와대 출입기자 송년회 동영상' 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2월 27일 출입기자들과 가진 마지막 송년회때 제작된 것이며,
행사장에서만 상영되었기때문에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석방을 허락합니다.

일로부터, 구속으로부터, 책임으로부터,

그리고 비판으로부터...

2007년12월27일 참여정부 출입기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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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타살설 의혹 증폭!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원인이 부엉이 바위에서의 투신자살이라는 게 공식적으로 확인됐지만 상당수의 누리꾼들이 인터넷을 통해 꾸준히 ‘타살의혹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계속 번복되는 경호관의 말과 헛점이 드러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적 시나리오는 타살의혹을 증폭 시키고 있습니다. 

 여론을 들어보기 위해 다음아고라와 티워에 들렀습니다.



아고라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의문사로 규정지으며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화장 및 영결식을 미루자는 청원글들이 올라와있었습니다.

 티워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 타살론과 관련된 토론글들이 여러개 올라와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토론 두개의 리서치 결과만 캡처해봤습니다. 59퍼센트와 67퍼센트, 즉 과반 수 이상의 사람들이 적어도 의혹을 가지고 있다는 셈이네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금만 시간을 내시어 자신의 의견을 밝혀주세요!

토론 참여 하러 가기!
서명하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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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비를 세울 곳이 없는 나라


청주의 시민단체가 제작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표지석이 건립장소를 확보하지 못해 창고에 보관돼 있습니다.

노컷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청주시민추모위원회는 추모제 기간에 모금된 시민 성금으로 노 전 대통령의 얼굴과 어록, 추모제 상황 등을 담은 글을 새긴 표지석을 제작했으나 공공장소에 설치하지 못한 채 청원군 오창면의 한 추모위원회원 집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 대통령 추모비의 건립장소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식밖의 상황이 왜 발생했을까요?
보도에 따르면 추모위원회는 노 전 대통령 49재가 열린 7월 10일 청주 상당공원에 표지석을 세울 계획이었으나 보수단체들의 반대와 청주시의 공원사용 불허 방침에 부딪혀 건립하지 못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정의의 편에서 국민들을 섬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립습니다.

노무현 추모비 건립을 반대하는 당신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쿠데타 정부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원도 생기는 마당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비가 갈 곳이 없는 여기는 대체 어떤 나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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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日 독도 도발에 발포 명령?


일본이 지난 2006년 7월 함정을 파견해 우리나라의 독도 주변 해양조사를 방해했을 때,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함정에 대한 발포 명령을 내려 일본이 철수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10일 일본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었던 아베 신조(安倍晉二) 전 총리가 9일 도쿄 분쿄(文京)구의 다쿠쇼쿠(拓殖)대에서 열린 이 학교 창립 110년 심포지엄에서 이같은 사실을 최초로 공개했습니다.

아베 전 총리에 따르면, 2006년 7월5일 한국 해양연구원 소속의 해양조사선 '해양 2000호'는 독도 근해의 일본측 배타적 경계수역(EEZ)와 독도 주변의 동해 해역에서 해양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에 일본 해상보안청은 순시선을 보내 무선 등으로 한국측에 조사 중지를 요구했으나 한국은 조사를 강행했습니다. 당시 양국 선박 사이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나돌았으나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이와 관련해 "위협사격 명령이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은밀하게 내려왔다(危害射擊命令が(韓國の)盧武鉉大統領からひそかに下った)"고 밝혔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일본정부에도 전달됐고, 이에 일본정부는 한국측의 해양조사를 저지할 경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해 관방장관이었던 자신이 조사 저지 활동을 중단시켰다고 밝혔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증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시절에 일본과의 군사적 충돌까지 불사하면서 독도 영유권을 사수하려 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재평가를 하는 또하나의 계기가 될 전망입니다.

[Culture & History/Talk to History] - 조선시대의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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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상속 재산보다 부채가 더 많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속자산이 재산보다 부채가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30일 국세청과 노 전 대통령 측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유족은 지난주 국세청에 제출한 상속세 신고서에서 재산을 13억여원으로, 부채를 16억여원으로 신고했다고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재산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와 인근 임야가 대부분이고 부채는 사저 건축비 충당을 위한 은행 대출 등이었습니다. 은행 빚과 막대한 이자부담을 더 많이 물려줬다는 것인데요.

정말 좋은 분이셨음을 한번 더 회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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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출범 기념 콘서트가 무료?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의 출범을 축하하는 공연이 오는 10월 9일(금) 오후 7시30분 성공회대학
교 운동장에서 열립니다. 공연의 타이틀은 'Power to the People'.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고 그 실천을 다짐하기 위해, 다시 한번 한자리에 모여 음악과 노래와 시로 시민들의 미래를 꿈꾸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1000명의 시민합창단, 시민음악단의 그랜드 오프닝

노무현재단 출범 이후 첫 번째 공식행사인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1000명의 ‘시민합창단’과 ‘시민음악단’이 꾸밀 오프닝 및 클로징 무대.

시민들은 각자가 연주 가능한 악기들로 편성된 ‘시민음악단’의 무대를 통해 공연의 시작을 알리고, 모두가 한 목소리가 되어 합창을 하며 공연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합창단과 음악단은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관객이 다만 공연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개입하여 함께 공연을 만들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됐습니다. 공연이 궁극적으로 목적하는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은 결국 이러한 구체적인 참여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연에서 음악단은 노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불렀던 '사랑으로'를 편곡하여 연주할 계획이며 합창단은 공연의 타이틀과 같은 존 레논의 'Power to the people'을 선곡했습니다. 합창단과 음악단은 특별한 소양보다는 참여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 함께 할 수 있으며, 참여를 원하는 시민들을 위해 9월 29일부터 노무현 대통령 공식홈페이지(www.knowhow.or.kr)를 통해 참가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유시민, 정연주 등 프로젝트밴드 ‘사람사는 세상’ 무대에

일반 시민들의 참여와 함께 재단 주요 인사들도 처음으로 무대에 직접 섭니다.

정연주, 유시민, 이재정, 장하진, 조기숙, 문성근 등 재단 임원진들로 구성되는 프로젝트밴드 ‘사람사는 세상’의 데뷔무대. 70년대 포크음악을 레퍼토리로 하되 사운드에서는 포크락의 느낌이 강한 프로젝트밴드는 이번 공연만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 공연이 끝나면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유시민 운영위원의 애절한 하모니카 연주는 프로젝트밴드의 음악성을 한층 높여 줄 것이라 기대가 큽니다.

시민들과 재단관계자뿐 아니라 일반 가수들도 공연에 참여합니다. 배우 권해효씨 사회로 조관우, 이한철, 우리나라, 강산에, YB(윤도현밴드) 등의 축하무대가 준비돼 있습니다. 특별히 권양숙 여사가 봉하마을에서 상경해 함께 공연을 지켜볼 예정입니다.


추모자리에서 열리는 희망의 노래와 두근거림…

성공회대학교는 지난 6월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공연이 열렸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를 보낸 슬픔의 자리에서 관객들과 가수들은 서로를 위로했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는 공간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번엔 새로운 희망의 노래들로 미래를 두근거리며 고대하는 자리를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공연을 연출하는 탁현민 한양대 겸임교수는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면, 공연은 그 마음들이 모이는 자리다. 모여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여 다시 한 걸음을 시작하게 만드는 것이 공연의 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공연 입장은 무료입니다.

※ 이번 공연은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서프라이즈, 시사인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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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재단 공식 출범, 사람사는세상 만들 수 있을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및 기념사업을 총괄할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노무현재단)이 23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창립 발기인대회를 갖고 정식 출범했습니다.

노무현 재단은 이날 이사장에 한명숙 전 총리를 선임하고 이해찬 전 총리와 문재인 전 비서실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강금원 시그너스 회장, 정연주 전 KBS 사장을 포함해 9명으로 이사회를 구성했습니다.

또 문 전 비서실장을 상임이사 겸 운영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이병완 전 비서실장,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등 노 전 대통령 참모 출신 및 정치권 인사 20여명과 황지우 시인, 이창동 영화감독 등 100여명으로 운영위를 꾸렸습니다.

한명숙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노 전 대통령은 실패하지 않았다"며 "우리 가슴에 난 이 상처를 뜨거운 열정으로 치유하고 재단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갔던 그 길을 이어가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도 "이제 우리는 슬픔과 분노를 넘어 미래를 열어가는 일을 해야할 때"라며 "좋은 추모사업을 통해 노무현의 가치, 철학과 정책을 실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축사에서 "행동하는 양심이라 할지라도 독선적인 양심은 결과적으로 악의 편이 될 수 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정신과 뜻을 이어받는 길은 우리가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큰 테두리에서 타협하면서 대통합을 이룩, 역사의 역주행을 막아내는 것"이라며 민주개혁진영의 대통합을 촉구했습니다.

재단은 향후 노 전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 업적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고 ▲기록물 보존 및 기념관 건립 ▲추모를 위한 제반 문화사업 추진 ▲묘역화 지원 사업 ▲연구.출판사업 ▲교육사업 및 연수프로그램 등 5대 사업을 중점 추진키로 했습니다.

구체적인 사업으로는 서울에 `노무현 기념관'을 설립하고 노 전 대통령의 인생역정을 담은 다큐영화와 육성 CD, 애니메이션, 각종 캐릭터 상품 등을 제작하며, 내년 1주기 전까지 노무현 전기를 완성할 예정입니다.

또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사상과 정책 등을 교육하고 미국 케네디 스쿨과 같은 대학원 대학을 만들어 민주주의 지도자를 육성키로 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참여정부 인사들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 일반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Issue & Opinion] - 내 마음 속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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