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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어린이의 동시, 깨달음을 주다


아프리카 어린이가 쓴 동시 한편이 세계의 많은이들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이 시를 쓴 어린이는 태양아래 있으면 빨간색, 추우면 파란색 등 상황에 따라 피부색이 변하는 백인들과 
자신의 피부를 비교하며 유색인종 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읽고, 오랫동안 자행되어 온 인종차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태어날 때부터 내 피부는 검은색                                 
WHEN I BORN, I BLACK

자라서도 검은색                                                        

WHEN I GROW UP, I BLACK

태양아래 있어도 검은색                                             

WHEN I GO IN SUN, I BLACK

무서울 때도 검은색                                                    

WHEN I SCARED, I BLACK

아플 때도 검은색                                                        

WHEN I SICK, I BLACK

죽을 때도 여전히 나는 한 가지 검은 색이랍니다              

AND WHEN I DIE, I STILL BLACK

그런데 백인들은요                                                        

AND YOU, WHITE FELLOW.

태어날 때는 핑크색이잖아요                                          

WHEN YOU BORN, YOU PINK

자라서는 흰색                                                               

WHEN YOU GROW UP, YOU WHITE

태양아래 있으면 빨간색                                                  

WHEN YOU IN SUN, YOU RED

추우면 파란색                                                                

WHEN YOU COLD, YOU BLUE

무서울 때는 노란색                                                         

WHEN YOU SCARED, YOU YELLOW

아플 때는 녹색이 되었다가                                               

WHEN YOU SICK, YOU GREEN

죽을 때는 회색으로 변하면서                                            

AND WHEN YOU DIE, YOU GRAY

그리고는 나를 유색인종이라고 부르나요?                          

AND YOU CALLING ME COLO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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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의 최연소 미소녀 레이싱 모델 화제


16살 미소녀 레이싱 모델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오전 11시 중국 장사 모터쇼의 아우디 부스에 등장한 이 미소녀는 리아오 징웬인데요. 모터쇼 행사장에서 포즈를 취한 그녀는 뚜렷한 이목구비에 세련된 스타일의 매력을 뽐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화장을 안한 상태에서 모터쇼를 준비하는 리아오 징웬의 모습은 여느 10대 소녀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민낯 차림의 소녀는 모터쇼 모델 때와의 이미지와 전혀 딴판으로 귀엽고 깜찍함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블로그 프레스원에 따르면 중국의 네티즌 사이에서는 모터쇼 모델도 좋지만 평범한 소녀의 모습이 더 낫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글에 일부 포함 된 정보의 출처는 티워(제휴 언론사들 포함)로서 저작권은 픽플커뮤니케이션즈에 있고, 픽플커뮤니케이션즈의 일원인 필자는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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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AKB48, 성접대…거부하면 하차?


지난 해 12월 31일 '제60회 NHK 홍백가합전'에 첫 출연하면서 일본의 국민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한 아이돌그룹 AKB48이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AKB48은 지난해 8월 무도관 공연을 하는가 하면 뉴욕과 칸에서도 라이브 공연을 성공시키는 등 지나치게 빠른 성장세를 보여왔습니다. AKB48이라는 이름은 여러가지 가십기사를 통해 알려졌지만 멤버 개개인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형편없는데요.

때문에 일각에서는 '마니아를 위한 걸그룹'에 불과한 팀이 어떻게 홍백가합전까지 출전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 연예전문 블로그는 스포츠신문 기자의 말을 인용해 '몸접대'의혹까지 제기했습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AKB48의 소속사 관계자들과 모임이 이었다. 그 자리에 AKB48 멤버 몇명이 나왔었다. 그런데 멤버들은 당연한듯 옆자리에 앉아 신체적 접촉도 마다 않으며 적극적이었다"고 증언했고, "접대를 거부하면 그룹내에서 하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여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 저작권에 대한 내용으 본 블로그의 공지사항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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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패러디 광고 디스전, 까고 까이고…최후의 승자는?

폭스바겐이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차'라는 카피로 광고를 내보내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차'라고 패러디한 닛산.

해외의 자동차 광고들 중 재치있는 디스광고들과 센스있는 패러디광고들을 모아봤습니다.


벤츠가 아무리 잘 나가봐야 BMW의 운송수단에 불과할뿐.

 
재규어가 쫄아서 도망가는 BMW.

 
BMW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백마(페라리). 

 벤츠도 시샘하는 재규어.

 
BMW의 도발, 

2006 남아공 올해의 차에 선정된 아우디에게 축하를 -2006 세계 올해의 차 BMW로 부터. 

 
이에 발끈한 아우디의 반격, 

'2006 세계 올해의 차에 선정된 BMW에게 축하를 -2000년부터 6년 연속 르망24에서 우승한 아우디로부터.

르망 24는 24시간 동안 누가 더 많이 달리는지를 겨루는 레이스로 심사위원 몇 명의 점수매기기 보다는 대회 성적으로 말하겠다라는 아우디의 멋진 반박.


이어진 스바루의 난입, 
각종 미인대회에서 우승하신 아우디와 BMW에게 축하를 -2006 올해의 엔진에 선정된 스바루로부터.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으로 승부하겠다는 스바루의 그럴듯한 난입이긴한데...


비교 디스 광고들을 지켜보고 있던 벤틀리가 손가락 하나로 모든 상황을 마무리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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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태연 기습 뽀뽀 논란, 15살 짜리 딸 젖가슴 드립도?


조영남 태연 기습 뽀뽀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21일 첫 방송된 KBS 2TV '빅브라더스'에서는 황석영·조영남·송승환·김용만이 진행을 맡고 소녀시대 태연·유리·티파니·서현이 게스트로 나왔습니다.

이날 소녀시대는 자신들의 솔직한 이야기와 해외 공연 중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입담을 과시했습니다. 방송이 끝날무렵 마지막 인사로 MC들과 소녀시대는 포옹을 나눴습니다. 이때 조영남은 태연을 꽉 끌어 안은 채 볼에 기습 뽀뽀를 했습니다.

이에 성희롱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요. 제가 봐도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선배라고 해도 태연의 의사를 묻지 않은 채 기습 뽀뽀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여러번 변태 인증을 했던 조영남이기에 논란이 더욱 뜨겁습니다. 

한편 조영남은 과거 방송에서 입양한 15살짜리 딸의 가슴이 봉긋해지기 시작했다는 말을해 비난을 산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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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혈서, 일본에 충성 맹세하는 충격적 내용…가슴이 먹먹한 이유


박정희가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까지 쓰며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청원했다는 1930년대 신문자료가 발견돼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앞서 박정희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자 아들 박지만이 지난 28일 게재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이에민족문제연구소는 5일 일본에서 입수한 혈서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31일자 ‘만주신문‘ 사본을 공개했습니다.

만주신문 기사에 따르면 박 전대통령은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 중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했으나 연령 초과로 일차 탈락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지원 서류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와 채용을 간곡히 호소하는 내용의 편지를 동봉해 1939년 재차 응모했는데 편지 내용은 일사봉공(一死奉公),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 등 확고한 신념도 담겨져 있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지만씨가 지난 10월28일 게재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후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본지가 흐려지고 정치쟁점화하고 있다"며 "근거 없는 비난을 방치할 때 민족사 정립이라는 대의의 진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박 전 대통령 자신의 언행이 담긴 객관적인 원사료를 공개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 확대를 막고 이성적인 토론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정희가 친일인물이라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이 일본에 혈서까지 써가며 충성을 맹세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딸이 여당의 지도자격으로 있으면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는 것도 충격적이구요.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성장을 마치 박정희 한 사람이 다 한 것처럼 말합니다만, 사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대한민국을 도약시킨 것은 박정희 한 사람이 아니라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들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역할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그의 친일행적과 장기독재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잖습니까.

친일파의 후손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 살고, 독립투사의 후손들은 아직도 만주 등지에서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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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건축물 BEST 5

우리나라에도 수 많은 건물들이 있지만, 랜드마크를 확실히 하고 있는 건축물은 아직 없습니다.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성냥갑 같은 건물들이 대다수이죠. 정말 신기하게 생긴 창조적인 건축물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미국 미주리주의 캔자스 시립 도서관입니다. 도서관 옆 주차장 입구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책들이 나란히 서있습니다. 더 멋진 사실은 이를 캔자스 시민 모두가 함께 만들었다는 겁니다. 캔자스 시청이 시민들을 상대로 가장 좋아하는 책을 설문조사 한 후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도서를 뽑아 건물 앞에 나열했으니 모두가 함께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비슷한 컨셉의 도서관입니다. 영국의 웨일스에 있다고 하네요.

 


다음으로 미국의 '롱거버거 빌딩'입니다. 이 건축물은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바스켓 모양입니다. 실제로도 이 롱거버거 빌딩은 바구니를 만드는 회사라고합니다. 회사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이 건물을 기획한 사람은 회사의 CEO인 롱거버거이고 목적은 회사를 알리기 위한 홍보수단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네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큐빅 하우스도 대표적인 신기한 건축물입니다. 이 건물은 각 큐빅마다 따로 독립된 3층 아파트입니다. 사방이 창문인 큐빅 하우스는 탄성을 자아내는 전망을 자랑하죠.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건축물이 40년전에 건설된 건물이라는 겁니다. 1970년대에 개발된 큐빅 하우스는 디자이너 피에트 블롬의 작품이죠. 



폴란드에도 유명한 신기한 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일그러진 집으로 불리는 '크로크드 하우스(crooked house)'입니다. 2층으로 된 크로크드 하우스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건축가 szotynscy zaleski가 동화 속에 등장하는 집을 보고 똑같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합니다.


마지막 주인공은 체코의 몰다우 강가에 있습니다. 해체주의 건축가인 미국의 프랭크 게리와 체코의 밀루닉이 함께 설계한 이 건물은 1995년도에 지어졌습니다. 왼쪽은 여자무용수 오른쪽은 남자무용수를 상징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댄싱 하우스로 불립니다. 


창조적인 건축물 하나로 수 많은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도시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건축물들이 하루 빨리 태어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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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의 남자'가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관객 1000만 시대에 이르러 한국영화에 또 다른 신호탄이 터지고 말았다.
<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를 뒤엎는 역사적인 기록이 탄생 한 것이다.

1200만은 관객을 동원하며, 당당히 역대 흥행 기록 1위에 오른 영화는 바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이다. 영화 “왕의 남자” 가 주목 받는 이유는 단지 뛰어난 흥행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왕의남자는 기존이 기록을 새운 블록퍼스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의 제작비인 100억대의 제작비에 비해 40억대의 저예산이라면 저예산일 수 있는 제작비를 가지고 당당하게 1위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러한 저예산의 제작비를 가지고 소이 “대박”을 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관객을 압박하는 빠른 스피드

대부분의 기존 사극영화에서 쓰여진 컷수는 900컷 정도로 한정되어있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다소 집중력을 흐려 질 수 있는 사극의 특징을 잘 집어냈던 것이다. 그는 빠른 극의 전개를 통해 지루해 질 수 있는 사극의 약점을 극복해 냈다. 그의 영화에 사용된 것은 총1800컷, 기존 사극영화의 2배나 되는 수이다. 이렇게 빠른 흐름은 관객을 스크린에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굉장히 호흡이 빠르고 거침이 없어 지루한 구석이 없다”(심재명 MK픽쳐스 사장)는 반응을 얻어냈다. 여기에 젊은 세대에게 낯선 광대놀이 등의 볼거리와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연산의 캐릭터는 오히려 사극의 장점으로 드러났다. “이런 요소들이 충족되다보니 젊은이들은 이 영화에서 사극 요소를 새로운 스타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 씨네21 2006.01.15 기사 인터뷰내용 발췌

대리만족의 충족감

모든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영화의 주인공에 의해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영화의 성공여부를 확인해 볼 때 대리만족의 정도가 어느 정도 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양상을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영화가 모든 관객들에게 똑같이 모두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 한 일이다.

극중 주인공의 감정과 느낌을 정확히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층은 극히 한정 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왕의 남자는 여러 관객층에 대리만족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연산, 공길, 장생 이라는 이 세 명의 캐릭터들이 서로 다른 관객층의 대리만족감을 충족시킨 것이다. 연령, 성별 대에 따라 이를 멜로로, 혹은 정치 사극으로 다르게 해석 했다는 점이 이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즉 스토리의 구성 자체의 해석이 관객층 마다 다르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영화를 보며 캐릭터에 따라 다르게 재해석 될 수 있는 스토리 구성의 탄탄함이 여러 관객층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었다고 사료 된다.

관객들이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준 이유 중 또 한 가지는 현재 시대흐름의 반영 되었다는 점이다.

현대사회에는 계급이 존재 하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사람들의 주류 사회와 비주류 사회를 갈라놓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주류와 비주류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환멸감과 지치고 벗어나고 싶은 관객들의 마음에 한 줄기 웃음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길과 장생의 광대놀이에서 왕을 조롱 하고, 희화 시키면서 주류사회에, 즉 왕을 광대의 신분, 비주류의 신분으로 정면 비판을 가한다.

기존 질서에 대한 광대의 반기는 영화를 보는 평민의 입장에서의 관객에게 매우 통쾌하고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끔 한다.

평민인 관객 입장에서는 장생을 통한 대리만족감을 갖고, 공길의 처지에서 소수자에 대한 연민을 품고, 육갑·칠득·팔복 트리오에게서 동질감에서 비롯되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뿐더러, 최고 권력자인 왕의 유약한 면을 엿볼 수 있어 흡족하다. 크게는 국가, 작게는 학교나 회사 등으로 치환시킬 수 있는 인간관계의 소우주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어 보인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다

“왕의 남자” 라는 영화의 제목이 정해지기 까지는 많은 우여 곡절이 있었다.

너무 직접적인 동성애 코드를 들어내는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과감하기도 한 이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동성애 코드를 제목에서 드러내는 시도는 위험천만한 요소를 품고 있다. 이러한 위험천만함을 무릅쓰고 “왕의 남자”라는 이름을 선택 한 것은 동성애적 코드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회적 흐름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완벽하게 동성애를 용인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 또 한 이들이 잡아낸 포인트였다.

제목에 동성애적 코드를 심어 궁금증을 유발 시킨 뒤 영화 속에서는 거부감이 들 정도의 노골적인 동성애적 코드를 배제 했다는 것이 왕의남자의 특징이다. 동성애적 코드를 제목에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영화 내에서 동성애적인 삼각관계는 그렇게 많이 드러내지 않고 있다. 원작<이>에서 표현된 것과는 다르게 감독만의 재해석으로 인해 이 부분은 다소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이러한 동성애적 코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이중적 해석이 가능하게 표현함으로써 관객이 느끼기에 따라 재해석 될 수 있는 요소로써 ‘동성애’라는 코드를 남겨 주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동성애적 코드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기존의 동생에 코드의 영화와는 다른 캐스팅이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기존 동성애 코드의 영화가 관객들에게 심한 거부감을 느끼게 한 것은 그들의 극히 남성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왕의남자는 이러한 면을 보완하기 위해 소이 말하는 “꽃미남 배우”를 캐스팅 했다. 여자 같은 외모의 남자를 캐스팅해서 관객들이 느끼기에 “내가 남자라도 사랑 할 수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끔 해서 거부감을 다소 줄일 수 있다는 전략이었다.

이는 기존의 타겟층에 속하지 않았던 20대 초중반의 여자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들였으며, 이것은 자연스럽게 타겟층의 확대로 이어 지고, 또한 기대하지 않았던 “이준기 폐인” 이라는 신드롬 까지 불러일으키며 영화를 한번 본 관객들이 이준기를 보기위해 또 다시 영화를 보게되고, 한편의 영화를몇 번 씩 보게 되면서 이는 자연스레 “왕의남자 폐인”으로 까지 발전 하게 되었다. 이는 기록적인 흥행성적을 내는데 기대 이상의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여러 요소들이 합쳐져 동성애적 코드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동성애적 코드를 가진 상업영화에 비해 월등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 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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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조선시대 성군을 꼽으라면 대부분 조선 초기 문화와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전성시대를 꽃피게 한 세종과 조선후기 합리적 문화로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의문의 죽음으로 사라져간 정조 그리고 효심이 깊고, 타고난 재능과 능력을 갖췄으나 역시 일찍 생을 마감한 인종을 들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요즘 말로 하면 막장, 그 시대의 최악의 임금을 꼽자면,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이후 폭군으로 변한 연산군, 조선 최악의 전란에 아무런 준비도 못 하고 있다가 전란이 일어나자 궁을 버리고 도망가기 바빴으며 그런 전쟁을 이겨낸 장수와 흉흉한 민심을 수습한 세자를 오히려 의심하고 견제한 선조, 그리고 스스로 반정을 일으켜서 왕이 된 후 삼전도의 치욕을 맞이한 인조가 대표적입니다.

 역사는 승자의 것, 기록자의 것이기 때문에 인조 재위 이후 역사 속에서 광해군은 연산군과  동급의 패륜을 저지른 조선 최악의 군왕으로 기록되고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마치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박정희, 이명박을 비판하고 외면하는 것이 자기 부정이기에 군부 독재정권을 포장하고 미화시키는 것 같이 인조와 인조 이후의 왕들로서는 정통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더구나 조선은 성리학을 기초로 한 명분을 중시하는 왕조) 광해군을 폭군으로 몰아 인조를 미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듯이 광해군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시절이 길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음) 400여 년 전 광해군과 인조, 그들은 지금의 노무현과 이명박과 너무 닮아있습니다.
 

광해군, 전란으로 파탄 난 나라를 물려받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후 도망간 임금과 문무백관 그리고 사대부들에 대한 백성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탄 궁궐은 왜군이 아닌 백성이 불 지른 것이었고, 피난 중인 선조에게 비난하고 심지어는 돌을 던지는 경우까지 비일비재할 정도로 극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광해군은 이런 혼란의 시대에 세자로 책봉되어 맹산, 곡산, 이천 등지를 순회하면서 왜군을 교란시키고 백성을 위무하며 왕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광해군은 적자(왕의 정비 소생)가 아닌 후궁의 소생이었습니다. 정비의 소생이 없던 선조가 즉위 말년시절 51살 되던 해 19살의 정비를 맞이했는데, 그녀가 인목왕후였습니다. 그리고 그 인목왕후로부터 적자가 태어났는데 바로 영창대군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잘 수습하고 나가고 있었음에도, 대신들의 흔들기와 선조의 우유부단함 등으로 인해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결국 선조의 승하로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조의 광해군 폐위 이유 중의 하나인 형제들을 죽이고 대비를 폐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아직 국난으로 나라가 혼란스럽고 자신은 적자가 아닌 상태에서 왕권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되었는데, 분명 동복형제와 이복형제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광해군은 신하들의 주청을 극구 반대했다고 하지만 결국엔) 잘못이긴 하지만, 조선 초기 태종과 그리고 세종의 아들 세조도 이복형제와 동복형제를 제거한 후 왕권을 강화함으로써 오히려 훌륭한 왕으로 추존받고 있음을 볼 때 억울한 측면도 강합니다. 더구나 영조의 경우엔 친아들 적자인 사도세자를, 인조의 경우도 친아들 적자인 소현세자에 대한 독살 가능성이라는 큰 패륜을 저지른 것을 봤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계비인 인목대비를 폐한 것으로 패륜아로 낙인찍혔지만, 계대비인 정순왕후와의 갈등으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정조나 조선 최악의 왕비로 꼽히는 문정왕후를 계비로 두고 마찬가지로 독살설로 세상을 떠난, 살았으면 조선의 또 하나의 성군으로 기록되었을 인종을 생각한다면 계비를 두고 정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했을지는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인조반정과 그 이후 인목대비의 행동을 본다면)

 오히려 광해군 시절 민심은 광해군으로 향해 있었고 폐비 사건은 궁중에서 자주 일어났던 왕비나 세자빈의 폐비 사건 정도로 여겼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노무현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에서 집권하게 됩니다. 물론 IMF라는 큰 산은 김대중 정부에서 끝냈지만 그것을 끝내기 위한 경기부양책이었던 카드남발로 인한 신용대란, 부시의 집권과 이라크 전쟁으로 대표되는 극단적 상황을 통한 유가상승과 북한과 미국 간의 알력다툼 등 어려운 상황에서 집권하게 됩니다.

 세금의 개혁, 국가재정의 확보

 왜란으로 파탄 난 경제살리기와 국가재정 확보를 위해 광해군은 혁신적인 조세개혁인 대동법을 실시하게 됩니다. 이는 백성에게 압박으로 다가온 공납제도의 개혁으로 조세정의를 위한 개혁이었으며 양반 지주층의 반발을 몰고 옵니다.

 또한 조세를 정확히 조사하기 위해서 양전사업(토지조사사업)을 하게 됩니다. 즉, 누가 어디에 얼마의 땅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하여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원칙적으로는 20년에 한 번씩 시행되어야 할 제도였으나 조선왕조 통틀어 4번 정도밖에 시행되지 않은 제도였습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양안을 기록하여 각 관청에 두게 되는데, 지금도 있는 자들이 더 세금을 안 내려는 것처럼 당시도 사대부들은 자신의 이름을 빼버리고 나라에서 주는 녹만 타 먹고 세금은 내지 않아 백성만 세금을 내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양전사업과 대동법 시행으로 광해군은 백성의 민심을 잡게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기득권들의 거센 반발을 받으면서 종부세(종합부동산세) 등의 세금변화와 여당의 삽질과 야당의 반대로 누더기가 되었지만 4대 개혁법안(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등으로 대표되는 개혁적 정책 등을 실시하거나 시도하였습니다.

 한편, 광해군은 국가의 위신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전란으로 소실된 궁궐의 재건을 추진하였으나 오히려 노역에 동원된 백성의 불만과 반정의 또 다른 명분을 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궁궐 재건은 조선의 어느 군주라도 시급히 해야 했을 사안이었기 때문에 광해군으로서는 그것을 나서서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전 정권에서 해결하지 못한,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사패산 터널 문제, 방폐장 문제, 과거사 재조명과 정부차원에서의 사과, FTA 타결(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등의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수도 이전 추진

  정조가 화성으로 수도 이전을 하려 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광해군이 수도 이전을 추진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광해군은 경기도 파주 교하 일대에 신도읍지 건설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왜란 이후 민간에 널리 퍼졌던 풍수지리에 입각한 이씨왕조멸망설(정씨가 왕이 된다는)을 일축시키고 사회 전반을 쇄신하기 위해 추진하려 했으나, 전쟁 후 피폐함과 흉년으로 인해 백성의 불만과 인플레이션 유발을 걱정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광해군이 물러남에 따라 정조의 시도가 있기까지 수도 이전은 거론되지 못했습니다. 수도 이전은 안보를 위해서, 경제를 위해서 긍정적 이유로 추진하려 했지만 당시 상황이 허락지 않았던 것입니다.

 조금 다른 상황이기는 하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져서 각종 문제에 시달리는 수도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도 수도 이전을 추진하였으나, 기득권층의 반발에 헌법소원까지 가는 과정에서 위헌으로 판결이 나 행정수도로 일부 행정기관을 이동하는 선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작은 나라,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빛난 자주적 실리외교

 이미 중화주의로 조선 지배층 사대부들이 받들던 명나라는 나라가 기울어가고 있었고, 반대편에서 서양문물을 흡수한 중화주의자들이 오랑캐로 적대시하던 청(후금)은 커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광해군은 명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또한 청의 도발을 막을 수 있는 양국을 오가는 자주적 실리외교에 힘쓰게 됩니다. 사대주의와 성리학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조선의 왕으로서는 파격적이고 현실적인 감각의 외교가라 할 수 있습니다.

 의리든 명분이든 조선 지배논리에 입각해 명을 돕게 되면, 안 그래도 어려운 전란 이후 나라상황에서 엄청난 국가적 손실과 존망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광해군은 국제정세에 관한 날카로운 분석력과 소신과 결단력으로 외교를 추진했습니다. 당시 신료들 중 외교전문가가 없는 와중에 일일이 외교를 챙겼다고 합니다.

 다급해진 명의 요청에 강홍립을 마지못해 파견하나 이미 청의 누루하치와 비밀조약을 통해 출정 제스쳐만 취하고 항복을 하는 실리적 선택을 하게 됩니다. 즉, 내부의 사림과 명의 명분을 잡고 청과 비밀협약으로 실리까지 챙기는 그야말로 대국 사이의 작은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군주였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끊겼던 일본과의 국교를 회복시켜 남아 있던 왜국과의 전쟁위협을 해소하고 경제적 이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도 실리외교 자원외교로 대표되는 외교를 통해 한반도를 가운데 놓고 벌어지는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특히 북한과 정상회담을 김대중 정부에 이어 성사시킬 정도로 남북관계도 좋게 유지하며 유라시아 경제권, 북한과 연계한 대륙과 이어지는 횡단열차, 북한의 막대한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한반도의 새로운 경제를 위해 또한 평화를 위해 외교를 실행합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원 확보에 힘써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고 무엇보다 세계 어느 곳 모든 지도자들에게 신뢰를 확보하였고, 미국이 서서히 힘이 떨어진다는 것에 대비해 EU로 대표되는 유럽 그리고 중국 등 새로운 쪽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광해군이 외교를 직접 챙긴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 또한 내치는 책임총리제로 총리에게 챙기게 하고 자신은 외교와 굵직한 현안 해결에 힘쓴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28일 Howard W. French라는 기자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노무현 정부의 외교성과에 대해 “동아시아 문제를 다루는 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감당한 역할을 이해할 만한 미국인들은 별로 없다.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 선출된 지도자가 북한 위기에 대해 어떠한 군사적 해결도 반대한다고 천명함으로써 미국 정부는 점진적으로 외교적 수단에 의존하는 것 말고는 다른 실질적인 방안을 강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중략> 미국과 북한은 결국 협상을 통해 핵확산 문제와 궁극적 관계정상화에 관해 보기 드문 외교적 이해에 이르렀다” “그는 변방에 있는 작은 국가의 지도자였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라고 극찬하며 평가 했습니다

 또한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보좌관은 중앙일보에 부시와 노무현의 비화를 밝히며 “한미동맹에 대한 그의 기여는 (친미 대통령이었던) 전두환·노태우 이상이다. 그가 퇴임하는 2008년 2월 현재 한미 동맹은 훨씬 강하고 좋아졌다” 라고 평가하며 “중국이 미국 측에 아시아에서 미국을 주축으로 對中 친미동맹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그 동맹국으로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을 언급하면서 한국만 쏙 뺐다”고 일화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미 관계에 관심이 있는 미국 기자의 눈에나 부시의 고급관료 눈에 비친 노무현 대통령은 강대국 미국에 대해 굽히지 않고 냉온전략을 사용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한미 동맹관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며 그 와중에도 북한, 중국과도 척을 지지 않는 훌륭한 양면외교를 수행했다는 점입니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국익을 지키려다 사대주의자들에게 쫓겨나 일개 군으로 강등되었다가 현대에 와서야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 능란한 양면외교 솜씨를 인정받고 당쟁의 희생자로 불리는 광해군 이혼(李琿)과 노무현, 둘은 그렇게 닮아있습니다.

 세력이 없는 정권

  광해군 정권의 주 인물들은 대북파로 불리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사대부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인물들로, 몰락해가던 서인과 같은 북인에서 갈라져 나온 소북파 등과 적대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참여정부시절 이른바 노무현 세력은 보수세력에는 좌파빨갱이로, 진보세력에는 보수자유주의 세력으로 비춰집니다. 이 당시도 마찬가지여서 대북세력은 명분을 외면한 위험한 세력으로 비춰져, 참여정부 당시 한나라당과 민노당으로 대표되는(지금은 민노와 진보신당으로 나뉘었지만) 극과 극이 참여정부를 헐뜯은 것처럼, 소북과 서인 모두의 공격을 받고 결국엔 반정으로 집권세력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최악의 군주 인조, 그와 닮은 이명박

  앞서 언급한 폐비사건으로 대표되는 패륜과 실리외교란 명분 아래 인조는 스스로 반란을 일으켜 왕위에 오르게 되니 인조반정입니다. (연산군 당시 중신들이 반란 후 추대한 중종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리고는 정통성을 위해 광해군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특히 반정 명분을 강화하기 위해 명과의 외교를 강화하고 청을 배척하게 됩니다. 광해군의 외교를 오랑캐와의 외교로 조선을 오랑캐와 금수가 되게 한 외교였다 비난하고 외교뿐 아니라 모든 정책에서 광해군과 반대되는 정책을 내놓고 추진합니다. (광해군이 틀려야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광해군의 모든 것을 부인합니다)

 400년 후 이 땅에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명박을 대표로 하는 한나라당 정권은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평가하고 ‘Anything But Roh’로 대표되는 참여정부 길게는 국민의 정부와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는 곧 국가적 피해, 국민적 피해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400년 전 백성이 광해군을 인정하고 인조를 무시한 것처럼 지금 이 땅에서 자신들의 손으로 대통령을 만들긴 했지만 다시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이명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독재정권의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IMF를 해결한 민주정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야기하는 상황은 전란을 무사히 복구하고 다시 안정화시킨 광해군을 폭군으로 묘사한 상황과 지금과 닮지 않았습니까?

 비슷한 상황은 외교에서도 발생합니다. 인조는 광해군의 ‘친금배명’ 정책을 빌미로 반정을 했는데 명나라는 찬탈로 인식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명나라는 광해군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조선 조정이 광해군을 비하하는 글을 명나라에 지속적으로 보내자 명나라는 “인조의 마음속에는 비단 광해군뿐만 아니라 중국도 없다. 당연히 선유하여 그 죄를 밝혀 조선 백성들로 하여금 속히 반역의 도적을 토벌하고, 폐주를 복위하게 해야 한다. 설령 조선 백성이 인조를 군주로 삼았더라도 당연히 폐위시켜야 한다”라는 답변을 내립니다.

 이에 인조 조정은 “조선의 200년 사대지성이 모두 허위로 돌아갔다. (중략) 과인은 당연히 명과 협력해 기필코 오랑캐를 무찔러 없앨 생각이다”라는 교지를 발표하고 이에 명나라는 사건진상규명단을 보내고 조선 측은 사신에게 은자 약 13만 냥을 접대비로 준비했지만 명나라 사신들은 성에 안 차 개성의 인삼을 요구했고, 조선 측이 그것을 들어주고서야 상황이 일단락됩니다.

 지금의 상황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이명박 정권은 전임정권 시절 악화하지도 않은 오히려 대한민국 래 미 관료 스스로 가장 좋았다던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외치며 이미 막바지인 부시 정권에 예쁘게 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인조가 접대비에 개성인삼까지 준 것처럼 미국산 쇠고기라는 선물을 안겨준 것은 너무 닮지 않았습니까?

 또한 이후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대외정세를 파악 못 하고 주제넘게 이어진 청을 향한 무시는 지금 북미관계의 회복과 EU의 위상강화, 중국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각종 외교적 결례만을 범하다 북한에 무시당하고, 인조시절 반청을 외친 오버처럼 핵무장까지 언급하는 의원을 가진 정당과 북한을 아직도 탓하는 이명박과 닮지 않았습니까?

 당시 명과 청에 모두 무시당한 인조처럼 지금 미국을 비롯한 북한 중국 러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심지어 제3세계로 불리는 국가들에도 무시당하는 이명박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세계의 흐름을 모르고 망해가는 명국에 매달린 인조와 국제질서의 재편과 미국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흑인은 대통령이 안 될 거라 판단하고 부시와 공화당에 올인한 이명박정권은 쌍둥이지 않습니까?

 광해군이 간신히 회복한 조선은 인조 이후 사실상 끝이 나버렸습니다.(물론 비운의 소현세자나 정조가 제대로 살았다면 모를 일이지, 이들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왕비나 대신 등의 권력이 강화되고 왕권은 축소되는 몰락기의 왕조였습니다.)

 웬 광해군과 노무현 대통령을 비교하느냐 실망하거나 기분 나쁜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역사가 승자의 것이기 때문에 광해군은 묘호를 가지지 못한 것이고 인조는 ‘조’의 시호를 받은 것입니다. (광해군이 묘호가 생기면 인조의 정통성은 물론 이후 군왕들의 정통성도 없어지므로 조선 최고의 왕인 세종도 ‘조’가 아닌 종인데 최악 임금들인 선조나 인조는 ‘조’이므로 묘호로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제대로 평가된다면 광해군은 군이 아닌 ‘조’가 붙어야 하고 인조가 군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묘호는 후대 왕이 정하는 것이므로 안타까운 결과로 지금까지 이어지지만)

 광해군이 최근 들어 재평가 받는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도 언젠가는 나오리라 믿습니다. 또 광해군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서가 아니라 빠른 시일에 나오기를 희망하며 그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Issue & Opinion] - 노무현 전 대통령, 日 독도 도발에 발포 명령?
[Culture & History/Talk to History] - 역대 대통령들의 혈액형은?

※ 저작권에 대한 내용 본 블로그의 공지사항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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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외계인 잡은 농부, 의문의 죽음 충격


 아기 외계인을 덫으로 잡아 익사시킨 멕시코 농부 마라오 로페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미확인비행물체(UFO) 전문가 조슈아 워런(32)에 따르면 로페스는 한 도로변에 주차된 자동차 안에서 불 타 숨졌는데 당시 화염의 온도가 일반 불의 온도보다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에 따라 익사한 아기 외계인의 가족이 로페즈에게 복수를 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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