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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의 남자'가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역사&문화/Meet with Cutlure

by 편집국장 2020. 1. 28.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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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1000만 시대에 이르러 한국영화에 또 다른 신호탄이 터지고 말았다.
<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를 뒤엎는 역사적인 기록이 탄생 한 것이다.

1200만은 관객을 동원하며, 당당히 역대 흥행 기록 1위에 오른 영화는 바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이다. 영화 “왕의 남자” 가 주목 받는 이유는 단지 뛰어난 흥행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왕의남자는 기존이 기록을 새운 블록퍼스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의 제작비인 100억대의 제작비에 비해 40억대의 저예산이라면 저예산일 수 있는 제작비를 가지고 당당하게 1위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러한 저예산의 제작비를 가지고 소이 “대박”을 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관객을 압박하는 빠른 스피드

대부분의 기존 사극영화에서 쓰여진 컷수는 900컷 정도로 한정되어있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다소 집중력을 흐려 질 수 있는 사극의 특징을 잘 집어냈던 것이다. 그는 빠른 극의 전개를 통해 지루해 질 수 있는 사극의 약점을 극복해 냈다. 그의 영화에 사용된 것은 총1800컷, 기존 사극영화의 2배나 되는 수이다. 이렇게 빠른 흐름은 관객을 스크린에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굉장히 호흡이 빠르고 거침이 없어 지루한 구석이 없다”(심재명 MK픽쳐스 사장)는 반응을 얻어냈다. 여기에 젊은 세대에게 낯선 광대놀이 등의 볼거리와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연산의 캐릭터는 오히려 사극의 장점으로 드러났다. “이런 요소들이 충족되다보니 젊은이들은 이 영화에서 사극 요소를 새로운 스타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 씨네21 2006.01.15 기사 인터뷰내용 발췌

대리만족의 충족감

모든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영화의 주인공에 의해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영화의 성공여부를 확인해 볼 때 대리만족의 정도가 어느 정도 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양상을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영화가 모든 관객들에게 똑같이 모두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 한 일이다.

극중 주인공의 감정과 느낌을 정확히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층은 극히 한정 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왕의 남자는 여러 관객층에 대리만족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연산, 공길, 장생 이라는 이 세 명의 캐릭터들이 서로 다른 관객층의 대리만족감을 충족시킨 것이다. 연령, 성별 대에 따라 이를 멜로로, 혹은 정치 사극으로 다르게 해석 했다는 점이 이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즉 스토리의 구성 자체의 해석이 관객층 마다 다르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영화를 보며 캐릭터에 따라 다르게 재해석 될 수 있는 스토리 구성의 탄탄함이 여러 관객층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었다고 사료 된다.

관객들이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준 이유 중 또 한 가지는 현재 시대흐름의 반영 되었다는 점이다.

현대사회에는 계급이 존재 하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사람들의 주류 사회와 비주류 사회를 갈라놓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주류와 비주류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환멸감과 지치고 벗어나고 싶은 관객들의 마음에 한 줄기 웃음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길과 장생의 광대놀이에서 왕을 조롱 하고, 희화 시키면서 주류사회에, 즉 왕을 광대의 신분, 비주류의 신분으로 정면 비판을 가한다.

기존 질서에 대한 광대의 반기는 영화를 보는 평민의 입장에서의 관객에게 매우 통쾌하고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끔 한다.

평민인 관객 입장에서는 장생을 통한 대리만족감을 갖고, 공길의 처지에서 소수자에 대한 연민을 품고, 육갑·칠득·팔복 트리오에게서 동질감에서 비롯되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뿐더러, 최고 권력자인 왕의 유약한 면을 엿볼 수 있어 흡족하다. 크게는 국가, 작게는 학교나 회사 등으로 치환시킬 수 있는 인간관계의 소우주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어 보인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다

“왕의 남자” 라는 영화의 제목이 정해지기 까지는 많은 우여 곡절이 있었다.

너무 직접적인 동성애 코드를 들어내는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과감하기도 한 이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동성애 코드를 제목에서 드러내는 시도는 위험천만한 요소를 품고 있다. 이러한 위험천만함을 무릅쓰고 “왕의 남자”라는 이름을 선택 한 것은 동성애적 코드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회적 흐름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완벽하게 동성애를 용인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 또 한 이들이 잡아낸 포인트였다.

제목에 동성애적 코드를 심어 궁금증을 유발 시킨 뒤 영화 속에서는 거부감이 들 정도의 노골적인 동성애적 코드를 배제 했다는 것이 왕의남자의 특징이다. 동성애적 코드를 제목에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영화 내에서 동성애적인 삼각관계는 그렇게 많이 드러내지 않고 있다. 원작<이>에서 표현된 것과는 다르게 감독만의 재해석으로 인해 이 부분은 다소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이러한 동성애적 코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이중적 해석이 가능하게 표현함으로써 관객이 느끼기에 따라 재해석 될 수 있는 요소로써 ‘동성애’라는 코드를 남겨 주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동성애적 코드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기존의 동생에 코드의 영화와는 다른 캐스팅이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기존 동성애 코드의 영화가 관객들에게 심한 거부감을 느끼게 한 것은 그들의 극히 남성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왕의남자는 이러한 면을 보완하기 위해 소이 말하는 “꽃미남 배우”를 캐스팅 했다. 여자 같은 외모의 남자를 캐스팅해서 관객들이 느끼기에 “내가 남자라도 사랑 할 수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끔 해서 거부감을 다소 줄일 수 있다는 전략이었다.

이는 기존의 타겟층에 속하지 않았던 20대 초중반의 여자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들였으며, 이것은 자연스럽게 타겟층의 확대로 이어 지고, 또한 기대하지 않았던 “이준기 폐인” 이라는 신드롬 까지 불러일으키며 영화를 한번 본 관객들이 이준기를 보기위해 또 다시 영화를 보게되고, 한편의 영화를몇 번 씩 보게 되면서 이는 자연스레 “왕의남자 폐인”으로 까지 발전 하게 되었다. 이는 기록적인 흥행성적을 내는데 기대 이상의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여러 요소들이 합쳐져 동성애적 코드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동성애적 코드를 가진 상업영화에 비해 월등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 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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