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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혈서, 일본에 충성 맹세하는 충격적 내용…가슴이 먹먹한 이유


박정희가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까지 쓰며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청원했다는 1930년대 신문자료가 발견돼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앞서 박정희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자 아들 박지만이 지난 28일 게재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이에민족문제연구소는 5일 일본에서 입수한 혈서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31일자 ‘만주신문‘ 사본을 공개했습니다.

만주신문 기사에 따르면 박 전대통령은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 중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했으나 연령 초과로 일차 탈락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지원 서류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와 채용을 간곡히 호소하는 내용의 편지를 동봉해 1939년 재차 응모했는데 편지 내용은 일사봉공(一死奉公),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 등 확고한 신념도 담겨져 있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지만씨가 지난 10월28일 게재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후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본지가 흐려지고 정치쟁점화하고 있다"며 "근거 없는 비난을 방치할 때 민족사 정립이라는 대의의 진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박 전 대통령 자신의 언행이 담긴 객관적인 원사료를 공개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 확대를 막고 이성적인 토론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정희가 친일인물이라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이 일본에 혈서까지 써가며 충성을 맹세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딸이 여당의 지도자격으로 있으면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는 것도 충격적이구요.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성장을 마치 박정희 한 사람이 다 한 것처럼 말합니다만, 사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대한민국을 도약시킨 것은 박정희 한 사람이 아니라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들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역할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그의 친일행적과 장기독재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잖습니까.

친일파의 후손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 살고, 독립투사의 후손들은 아직도 만주 등지에서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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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의 남자'가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관객 1000만 시대에 이르러 한국영화에 또 다른 신호탄이 터지고 말았다.
<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를 뒤엎는 역사적인 기록이 탄생 한 것이다.

1200만은 관객을 동원하며, 당당히 역대 흥행 기록 1위에 오른 영화는 바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이다. 영화 “왕의 남자” 가 주목 받는 이유는 단지 뛰어난 흥행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왕의남자는 기존이 기록을 새운 블록퍼스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의 제작비인 100억대의 제작비에 비해 40억대의 저예산이라면 저예산일 수 있는 제작비를 가지고 당당하게 1위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러한 저예산의 제작비를 가지고 소이 “대박”을 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관객을 압박하는 빠른 스피드

대부분의 기존 사극영화에서 쓰여진 컷수는 900컷 정도로 한정되어있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다소 집중력을 흐려 질 수 있는 사극의 특징을 잘 집어냈던 것이다. 그는 빠른 극의 전개를 통해 지루해 질 수 있는 사극의 약점을 극복해 냈다. 그의 영화에 사용된 것은 총1800컷, 기존 사극영화의 2배나 되는 수이다. 이렇게 빠른 흐름은 관객을 스크린에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굉장히 호흡이 빠르고 거침이 없어 지루한 구석이 없다”(심재명 MK픽쳐스 사장)는 반응을 얻어냈다. 여기에 젊은 세대에게 낯선 광대놀이 등의 볼거리와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연산의 캐릭터는 오히려 사극의 장점으로 드러났다. “이런 요소들이 충족되다보니 젊은이들은 이 영화에서 사극 요소를 새로운 스타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 씨네21 2006.01.15 기사 인터뷰내용 발췌

대리만족의 충족감

모든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영화의 주인공에 의해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영화의 성공여부를 확인해 볼 때 대리만족의 정도가 어느 정도 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양상을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영화가 모든 관객들에게 똑같이 모두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 한 일이다.

극중 주인공의 감정과 느낌을 정확히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층은 극히 한정 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왕의 남자는 여러 관객층에 대리만족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연산, 공길, 장생 이라는 이 세 명의 캐릭터들이 서로 다른 관객층의 대리만족감을 충족시킨 것이다. 연령, 성별 대에 따라 이를 멜로로, 혹은 정치 사극으로 다르게 해석 했다는 점이 이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즉 스토리의 구성 자체의 해석이 관객층 마다 다르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영화를 보며 캐릭터에 따라 다르게 재해석 될 수 있는 스토리 구성의 탄탄함이 여러 관객층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었다고 사료 된다.

관객들이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준 이유 중 또 한 가지는 현재 시대흐름의 반영 되었다는 점이다.

현대사회에는 계급이 존재 하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사람들의 주류 사회와 비주류 사회를 갈라놓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주류와 비주류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환멸감과 지치고 벗어나고 싶은 관객들의 마음에 한 줄기 웃음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길과 장생의 광대놀이에서 왕을 조롱 하고, 희화 시키면서 주류사회에, 즉 왕을 광대의 신분, 비주류의 신분으로 정면 비판을 가한다.

기존 질서에 대한 광대의 반기는 영화를 보는 평민의 입장에서의 관객에게 매우 통쾌하고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끔 한다.

평민인 관객 입장에서는 장생을 통한 대리만족감을 갖고, 공길의 처지에서 소수자에 대한 연민을 품고, 육갑·칠득·팔복 트리오에게서 동질감에서 비롯되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뿐더러, 최고 권력자인 왕의 유약한 면을 엿볼 수 있어 흡족하다. 크게는 국가, 작게는 학교나 회사 등으로 치환시킬 수 있는 인간관계의 소우주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어 보인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다

“왕의 남자” 라는 영화의 제목이 정해지기 까지는 많은 우여 곡절이 있었다.

너무 직접적인 동성애 코드를 들어내는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과감하기도 한 이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동성애 코드를 제목에서 드러내는 시도는 위험천만한 요소를 품고 있다. 이러한 위험천만함을 무릅쓰고 “왕의 남자”라는 이름을 선택 한 것은 동성애적 코드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회적 흐름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완벽하게 동성애를 용인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 또 한 이들이 잡아낸 포인트였다.

제목에 동성애적 코드를 심어 궁금증을 유발 시킨 뒤 영화 속에서는 거부감이 들 정도의 노골적인 동성애적 코드를 배제 했다는 것이 왕의남자의 특징이다. 동성애적 코드를 제목에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영화 내에서 동성애적인 삼각관계는 그렇게 많이 드러내지 않고 있다. 원작<이>에서 표현된 것과는 다르게 감독만의 재해석으로 인해 이 부분은 다소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이러한 동성애적 코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이중적 해석이 가능하게 표현함으로써 관객이 느끼기에 따라 재해석 될 수 있는 요소로써 ‘동성애’라는 코드를 남겨 주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동성애적 코드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기존의 동생에 코드의 영화와는 다른 캐스팅이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기존 동성애 코드의 영화가 관객들에게 심한 거부감을 느끼게 한 것은 그들의 극히 남성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왕의남자는 이러한 면을 보완하기 위해 소이 말하는 “꽃미남 배우”를 캐스팅 했다. 여자 같은 외모의 남자를 캐스팅해서 관객들이 느끼기에 “내가 남자라도 사랑 할 수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끔 해서 거부감을 다소 줄일 수 있다는 전략이었다.

이는 기존의 타겟층에 속하지 않았던 20대 초중반의 여자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들였으며, 이것은 자연스럽게 타겟층의 확대로 이어 지고, 또한 기대하지 않았던 “이준기 폐인” 이라는 신드롬 까지 불러일으키며 영화를 한번 본 관객들이 이준기를 보기위해 또 다시 영화를 보게되고, 한편의 영화를몇 번 씩 보게 되면서 이는 자연스레 “왕의남자 폐인”으로 까지 발전 하게 되었다. 이는 기록적인 흥행성적을 내는데 기대 이상의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여러 요소들이 합쳐져 동성애적 코드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동성애적 코드를 가진 상업영화에 비해 월등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 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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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조선시대 성군을 꼽으라면 대부분 조선 초기 문화와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전성시대를 꽃피게 한 세종과 조선후기 합리적 문화로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의문의 죽음으로 사라져간 정조 그리고 효심이 깊고, 타고난 재능과 능력을 갖췄으나 역시 일찍 생을 마감한 인종을 들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요즘 말로 하면 막장, 그 시대의 최악의 임금을 꼽자면,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이후 폭군으로 변한 연산군, 조선 최악의 전란에 아무런 준비도 못 하고 있다가 전란이 일어나자 궁을 버리고 도망가기 바빴으며 그런 전쟁을 이겨낸 장수와 흉흉한 민심을 수습한 세자를 오히려 의심하고 견제한 선조, 그리고 스스로 반정을 일으켜서 왕이 된 후 삼전도의 치욕을 맞이한 인조가 대표적입니다.

 역사는 승자의 것, 기록자의 것이기 때문에 인조 재위 이후 역사 속에서 광해군은 연산군과  동급의 패륜을 저지른 조선 최악의 군왕으로 기록되고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마치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박정희, 이명박을 비판하고 외면하는 것이 자기 부정이기에 군부 독재정권을 포장하고 미화시키는 것 같이 인조와 인조 이후의 왕들로서는 정통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더구나 조선은 성리학을 기초로 한 명분을 중시하는 왕조) 광해군을 폭군으로 몰아 인조를 미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듯이 광해군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시절이 길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음) 400여 년 전 광해군과 인조, 그들은 지금의 노무현과 이명박과 너무 닮아있습니다.
 

광해군, 전란으로 파탄 난 나라를 물려받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후 도망간 임금과 문무백관 그리고 사대부들에 대한 백성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탄 궁궐은 왜군이 아닌 백성이 불 지른 것이었고, 피난 중인 선조에게 비난하고 심지어는 돌을 던지는 경우까지 비일비재할 정도로 극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광해군은 이런 혼란의 시대에 세자로 책봉되어 맹산, 곡산, 이천 등지를 순회하면서 왜군을 교란시키고 백성을 위무하며 왕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광해군은 적자(왕의 정비 소생)가 아닌 후궁의 소생이었습니다. 정비의 소생이 없던 선조가 즉위 말년시절 51살 되던 해 19살의 정비를 맞이했는데, 그녀가 인목왕후였습니다. 그리고 그 인목왕후로부터 적자가 태어났는데 바로 영창대군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잘 수습하고 나가고 있었음에도, 대신들의 흔들기와 선조의 우유부단함 등으로 인해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결국 선조의 승하로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조의 광해군 폐위 이유 중의 하나인 형제들을 죽이고 대비를 폐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아직 국난으로 나라가 혼란스럽고 자신은 적자가 아닌 상태에서 왕권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되었는데, 분명 동복형제와 이복형제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광해군은 신하들의 주청을 극구 반대했다고 하지만 결국엔) 잘못이긴 하지만, 조선 초기 태종과 그리고 세종의 아들 세조도 이복형제와 동복형제를 제거한 후 왕권을 강화함으로써 오히려 훌륭한 왕으로 추존받고 있음을 볼 때 억울한 측면도 강합니다. 더구나 영조의 경우엔 친아들 적자인 사도세자를, 인조의 경우도 친아들 적자인 소현세자에 대한 독살 가능성이라는 큰 패륜을 저지른 것을 봤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계비인 인목대비를 폐한 것으로 패륜아로 낙인찍혔지만, 계대비인 정순왕후와의 갈등으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정조나 조선 최악의 왕비로 꼽히는 문정왕후를 계비로 두고 마찬가지로 독살설로 세상을 떠난, 살았으면 조선의 또 하나의 성군으로 기록되었을 인종을 생각한다면 계비를 두고 정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했을지는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인조반정과 그 이후 인목대비의 행동을 본다면)

 오히려 광해군 시절 민심은 광해군으로 향해 있었고 폐비 사건은 궁중에서 자주 일어났던 왕비나 세자빈의 폐비 사건 정도로 여겼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노무현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에서 집권하게 됩니다. 물론 IMF라는 큰 산은 김대중 정부에서 끝냈지만 그것을 끝내기 위한 경기부양책이었던 카드남발로 인한 신용대란, 부시의 집권과 이라크 전쟁으로 대표되는 극단적 상황을 통한 유가상승과 북한과 미국 간의 알력다툼 등 어려운 상황에서 집권하게 됩니다.

 세금의 개혁, 국가재정의 확보

 왜란으로 파탄 난 경제살리기와 국가재정 확보를 위해 광해군은 혁신적인 조세개혁인 대동법을 실시하게 됩니다. 이는 백성에게 압박으로 다가온 공납제도의 개혁으로 조세정의를 위한 개혁이었으며 양반 지주층의 반발을 몰고 옵니다.

 또한 조세를 정확히 조사하기 위해서 양전사업(토지조사사업)을 하게 됩니다. 즉, 누가 어디에 얼마의 땅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하여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원칙적으로는 20년에 한 번씩 시행되어야 할 제도였으나 조선왕조 통틀어 4번 정도밖에 시행되지 않은 제도였습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양안을 기록하여 각 관청에 두게 되는데, 지금도 있는 자들이 더 세금을 안 내려는 것처럼 당시도 사대부들은 자신의 이름을 빼버리고 나라에서 주는 녹만 타 먹고 세금은 내지 않아 백성만 세금을 내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양전사업과 대동법 시행으로 광해군은 백성의 민심을 잡게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기득권들의 거센 반발을 받으면서 종부세(종합부동산세) 등의 세금변화와 여당의 삽질과 야당의 반대로 누더기가 되었지만 4대 개혁법안(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등으로 대표되는 개혁적 정책 등을 실시하거나 시도하였습니다.

 한편, 광해군은 국가의 위신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전란으로 소실된 궁궐의 재건을 추진하였으나 오히려 노역에 동원된 백성의 불만과 반정의 또 다른 명분을 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궁궐 재건은 조선의 어느 군주라도 시급히 해야 했을 사안이었기 때문에 광해군으로서는 그것을 나서서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전 정권에서 해결하지 못한,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사패산 터널 문제, 방폐장 문제, 과거사 재조명과 정부차원에서의 사과, FTA 타결(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등의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수도 이전 추진

  정조가 화성으로 수도 이전을 하려 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광해군이 수도 이전을 추진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광해군은 경기도 파주 교하 일대에 신도읍지 건설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왜란 이후 민간에 널리 퍼졌던 풍수지리에 입각한 이씨왕조멸망설(정씨가 왕이 된다는)을 일축시키고 사회 전반을 쇄신하기 위해 추진하려 했으나, 전쟁 후 피폐함과 흉년으로 인해 백성의 불만과 인플레이션 유발을 걱정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광해군이 물러남에 따라 정조의 시도가 있기까지 수도 이전은 거론되지 못했습니다. 수도 이전은 안보를 위해서, 경제를 위해서 긍정적 이유로 추진하려 했지만 당시 상황이 허락지 않았던 것입니다.

 조금 다른 상황이기는 하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져서 각종 문제에 시달리는 수도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도 수도 이전을 추진하였으나, 기득권층의 반발에 헌법소원까지 가는 과정에서 위헌으로 판결이 나 행정수도로 일부 행정기관을 이동하는 선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작은 나라,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빛난 자주적 실리외교

 이미 중화주의로 조선 지배층 사대부들이 받들던 명나라는 나라가 기울어가고 있었고, 반대편에서 서양문물을 흡수한 중화주의자들이 오랑캐로 적대시하던 청(후금)은 커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광해군은 명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또한 청의 도발을 막을 수 있는 양국을 오가는 자주적 실리외교에 힘쓰게 됩니다. 사대주의와 성리학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조선의 왕으로서는 파격적이고 현실적인 감각의 외교가라 할 수 있습니다.

 의리든 명분이든 조선 지배논리에 입각해 명을 돕게 되면, 안 그래도 어려운 전란 이후 나라상황에서 엄청난 국가적 손실과 존망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광해군은 국제정세에 관한 날카로운 분석력과 소신과 결단력으로 외교를 추진했습니다. 당시 신료들 중 외교전문가가 없는 와중에 일일이 외교를 챙겼다고 합니다.

 다급해진 명의 요청에 강홍립을 마지못해 파견하나 이미 청의 누루하치와 비밀조약을 통해 출정 제스쳐만 취하고 항복을 하는 실리적 선택을 하게 됩니다. 즉, 내부의 사림과 명의 명분을 잡고 청과 비밀협약으로 실리까지 챙기는 그야말로 대국 사이의 작은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군주였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끊겼던 일본과의 국교를 회복시켜 남아 있던 왜국과의 전쟁위협을 해소하고 경제적 이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도 실리외교 자원외교로 대표되는 외교를 통해 한반도를 가운데 놓고 벌어지는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특히 북한과 정상회담을 김대중 정부에 이어 성사시킬 정도로 남북관계도 좋게 유지하며 유라시아 경제권, 북한과 연계한 대륙과 이어지는 횡단열차, 북한의 막대한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한반도의 새로운 경제를 위해 또한 평화를 위해 외교를 실행합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원 확보에 힘써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고 무엇보다 세계 어느 곳 모든 지도자들에게 신뢰를 확보하였고, 미국이 서서히 힘이 떨어진다는 것에 대비해 EU로 대표되는 유럽 그리고 중국 등 새로운 쪽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광해군이 외교를 직접 챙긴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 또한 내치는 책임총리제로 총리에게 챙기게 하고 자신은 외교와 굵직한 현안 해결에 힘쓴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28일 Howard W. French라는 기자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노무현 정부의 외교성과에 대해 “동아시아 문제를 다루는 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감당한 역할을 이해할 만한 미국인들은 별로 없다.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 선출된 지도자가 북한 위기에 대해 어떠한 군사적 해결도 반대한다고 천명함으로써 미국 정부는 점진적으로 외교적 수단에 의존하는 것 말고는 다른 실질적인 방안을 강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중략> 미국과 북한은 결국 협상을 통해 핵확산 문제와 궁극적 관계정상화에 관해 보기 드문 외교적 이해에 이르렀다” “그는 변방에 있는 작은 국가의 지도자였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라고 극찬하며 평가 했습니다

 또한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보좌관은 중앙일보에 부시와 노무현의 비화를 밝히며 “한미동맹에 대한 그의 기여는 (친미 대통령이었던) 전두환·노태우 이상이다. 그가 퇴임하는 2008년 2월 현재 한미 동맹은 훨씬 강하고 좋아졌다” 라고 평가하며 “중국이 미국 측에 아시아에서 미국을 주축으로 對中 친미동맹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그 동맹국으로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을 언급하면서 한국만 쏙 뺐다”고 일화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미 관계에 관심이 있는 미국 기자의 눈에나 부시의 고급관료 눈에 비친 노무현 대통령은 강대국 미국에 대해 굽히지 않고 냉온전략을 사용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한미 동맹관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며 그 와중에도 북한, 중국과도 척을 지지 않는 훌륭한 양면외교를 수행했다는 점입니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국익을 지키려다 사대주의자들에게 쫓겨나 일개 군으로 강등되었다가 현대에 와서야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 능란한 양면외교 솜씨를 인정받고 당쟁의 희생자로 불리는 광해군 이혼(李琿)과 노무현, 둘은 그렇게 닮아있습니다.

 세력이 없는 정권

  광해군 정권의 주 인물들은 대북파로 불리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사대부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인물들로, 몰락해가던 서인과 같은 북인에서 갈라져 나온 소북파 등과 적대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참여정부시절 이른바 노무현 세력은 보수세력에는 좌파빨갱이로, 진보세력에는 보수자유주의 세력으로 비춰집니다. 이 당시도 마찬가지여서 대북세력은 명분을 외면한 위험한 세력으로 비춰져, 참여정부 당시 한나라당과 민노당으로 대표되는(지금은 민노와 진보신당으로 나뉘었지만) 극과 극이 참여정부를 헐뜯은 것처럼, 소북과 서인 모두의 공격을 받고 결국엔 반정으로 집권세력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최악의 군주 인조, 그와 닮은 이명박

  앞서 언급한 폐비사건으로 대표되는 패륜과 실리외교란 명분 아래 인조는 스스로 반란을 일으켜 왕위에 오르게 되니 인조반정입니다. (연산군 당시 중신들이 반란 후 추대한 중종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리고는 정통성을 위해 광해군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특히 반정 명분을 강화하기 위해 명과의 외교를 강화하고 청을 배척하게 됩니다. 광해군의 외교를 오랑캐와의 외교로 조선을 오랑캐와 금수가 되게 한 외교였다 비난하고 외교뿐 아니라 모든 정책에서 광해군과 반대되는 정책을 내놓고 추진합니다. (광해군이 틀려야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광해군의 모든 것을 부인합니다)

 400년 후 이 땅에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명박을 대표로 하는 한나라당 정권은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평가하고 ‘Anything But Roh’로 대표되는 참여정부 길게는 국민의 정부와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는 곧 국가적 피해, 국민적 피해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400년 전 백성이 광해군을 인정하고 인조를 무시한 것처럼 지금 이 땅에서 자신들의 손으로 대통령을 만들긴 했지만 다시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이명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독재정권의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IMF를 해결한 민주정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야기하는 상황은 전란을 무사히 복구하고 다시 안정화시킨 광해군을 폭군으로 묘사한 상황과 지금과 닮지 않았습니까?

 비슷한 상황은 외교에서도 발생합니다. 인조는 광해군의 ‘친금배명’ 정책을 빌미로 반정을 했는데 명나라는 찬탈로 인식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명나라는 광해군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조선 조정이 광해군을 비하하는 글을 명나라에 지속적으로 보내자 명나라는 “인조의 마음속에는 비단 광해군뿐만 아니라 중국도 없다. 당연히 선유하여 그 죄를 밝혀 조선 백성들로 하여금 속히 반역의 도적을 토벌하고, 폐주를 복위하게 해야 한다. 설령 조선 백성이 인조를 군주로 삼았더라도 당연히 폐위시켜야 한다”라는 답변을 내립니다.

 이에 인조 조정은 “조선의 200년 사대지성이 모두 허위로 돌아갔다. (중략) 과인은 당연히 명과 협력해 기필코 오랑캐를 무찔러 없앨 생각이다”라는 교지를 발표하고 이에 명나라는 사건진상규명단을 보내고 조선 측은 사신에게 은자 약 13만 냥을 접대비로 준비했지만 명나라 사신들은 성에 안 차 개성의 인삼을 요구했고, 조선 측이 그것을 들어주고서야 상황이 일단락됩니다.

 지금의 상황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이명박 정권은 전임정권 시절 악화하지도 않은 오히려 대한민국 래 미 관료 스스로 가장 좋았다던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외치며 이미 막바지인 부시 정권에 예쁘게 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인조가 접대비에 개성인삼까지 준 것처럼 미국산 쇠고기라는 선물을 안겨준 것은 너무 닮지 않았습니까?

 또한 이후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대외정세를 파악 못 하고 주제넘게 이어진 청을 향한 무시는 지금 북미관계의 회복과 EU의 위상강화, 중국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각종 외교적 결례만을 범하다 북한에 무시당하고, 인조시절 반청을 외친 오버처럼 핵무장까지 언급하는 의원을 가진 정당과 북한을 아직도 탓하는 이명박과 닮지 않았습니까?

 당시 명과 청에 모두 무시당한 인조처럼 지금 미국을 비롯한 북한 중국 러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심지어 제3세계로 불리는 국가들에도 무시당하는 이명박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세계의 흐름을 모르고 망해가는 명국에 매달린 인조와 국제질서의 재편과 미국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흑인은 대통령이 안 될 거라 판단하고 부시와 공화당에 올인한 이명박정권은 쌍둥이지 않습니까?

 광해군이 간신히 회복한 조선은 인조 이후 사실상 끝이 나버렸습니다.(물론 비운의 소현세자나 정조가 제대로 살았다면 모를 일이지, 이들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왕비나 대신 등의 권력이 강화되고 왕권은 축소되는 몰락기의 왕조였습니다.)

 웬 광해군과 노무현 대통령을 비교하느냐 실망하거나 기분 나쁜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역사가 승자의 것이기 때문에 광해군은 묘호를 가지지 못한 것이고 인조는 ‘조’의 시호를 받은 것입니다. (광해군이 묘호가 생기면 인조의 정통성은 물론 이후 군왕들의 정통성도 없어지므로 조선 최고의 왕인 세종도 ‘조’가 아닌 종인데 최악 임금들인 선조나 인조는 ‘조’이므로 묘호로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제대로 평가된다면 광해군은 군이 아닌 ‘조’가 붙어야 하고 인조가 군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묘호는 후대 왕이 정하는 것이므로 안타까운 결과로 지금까지 이어지지만)

 광해군이 최근 들어 재평가 받는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도 언젠가는 나오리라 믿습니다. 또 광해군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서가 아니라 빠른 시일에 나오기를 희망하며 그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Issue & Opinion] - 노무현 전 대통령, 日 독도 도발에 발포 명령?
[Culture & History/Talk to History] - 역대 대통령들의 혈액형은?

※ 저작권에 대한 내용 본 블로그의 공지사항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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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건축물 BEST 5

우리나라에도 수 많은 건물들이 있지만, 랜드마크를 확실히 하고 있는 건축물은 아직 없습니다.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성냥갑 같은 건물들이 대다수이죠. 정말 신기하게 생긴 창조적인 건축물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미국 미주리주의 캔자스 시립 도서관입니다. 도서관 옆 주차장 입구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책들이 나란히 서있습니다. 더 멋진 사실은 이를 캔자스 시민 모두가 함께 만들었다는 겁니다. 캔자스 시청이 시민들을 상대로 가장 좋아하는 책을 설문조사 한 후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도서를 뽑아 건물 앞에 나열했으니 모두가 함께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비슷한 컨셉의 도서관입니다. 영국의 웨일스에 있다고 하네요.

 


다음으로 미국의 '롱거버거 빌딩'입니다. 이 건축물은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바스켓 모양입니다. 실제로도 이 롱거버거 빌딩은 바구니를 만드는 회사라고합니다. 회사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이 건물을 기획한 사람은 회사의 CEO인 롱거버거이고 목적은 회사를 알리기 위한 홍보수단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네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큐빅 하우스도 대표적인 신기한 건축물입니다. 이 건물은 각 큐빅마다 따로 독립된 3층 아파트입니다. 사방이 창문인 큐빅 하우스는 탄성을 자아내는 전망을 자랑하죠.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건축물이 40년전에 건설된 건물이라는 겁니다. 1970년대에 개발된 큐빅 하우스는 디자이너 피에트 블롬의 작품이죠. 



폴란드에도 유명한 신기한 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일그러진 집으로 불리는 '크로크드 하우스(crooked house)'입니다. 2층으로 된 크로크드 하우스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건축가 szotynscy zaleski가 동화 속에 등장하는 집을 보고 똑같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합니다.


마지막 주인공은 체코의 몰다우 강가에 있습니다. 해체주의 건축가인 미국의 프랭크 게리와 체코의 밀루닉이 함께 설계한 이 건물은 1995년도에 지어졌습니다. 왼쪽은 여자무용수 오른쪽은 남자무용수를 상징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댄싱 하우스로 불립니다. 


창조적인 건축물 하나로 수 많은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도시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건축물들이 하루 빨리 태어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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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어린이의 동시, 깨달음을 주다


아프리카 어린이가 쓴 동시 한편이 세계의 많은이들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이 시를 쓴 어린이는 태양아래 있으면 빨간색, 추우면 파란색 등 상황에 따라 피부색이 변하는 백인들과 
자신의 피부를 비교하며 유색인종 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읽고, 오랫동안 자행되어 온 인종차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태어날 때부터 내 피부는 검은색                                 
WHEN I BORN, I BLACK

자라서도 검은색                                                        

WHEN I GROW UP, I BLACK

태양아래 있어도 검은색                                             

WHEN I GO IN SUN, I BLACK

무서울 때도 검은색                                                    

WHEN I SCARED, I BLACK

아플 때도 검은색                                                        

WHEN I SICK, I BLACK

죽을 때도 여전히 나는 한 가지 검은 색이랍니다              

AND WHEN I DIE, I STILL BLACK

그런데 백인들은요                                                        

AND YOU, WHITE FELLOW.

태어날 때는 핑크색이잖아요                                          

WHEN YOU BORN, YOU PINK

자라서는 흰색                                                               

WHEN YOU GROW UP, YOU WHITE

태양아래 있으면 빨간색                                                  

WHEN YOU IN SUN, YOU RED

추우면 파란색                                                                

WHEN YOU COLD, YOU BLUE

무서울 때는 노란색                                                         

WHEN YOU SCARED, YOU YELLOW

아플 때는 녹색이 되었다가                                               

WHEN YOU SICK, YOU GREEN

죽을 때는 회색으로 변하면서                                            

AND WHEN YOU DIE, YOU GRAY

그리고는 나를 유색인종이라고 부르나요?                          

AND YOU CALLING ME COLO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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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외계인 잡은 농부, 의문의 죽음 충격


 아기 외계인을 덫으로 잡아 익사시킨 멕시코 농부 마라오 로페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미확인비행물체(UFO) 전문가 조슈아 워런(32)에 따르면 로페스는 한 도로변에 주차된 자동차 안에서 불 타 숨졌는데 당시 화염의 온도가 일반 불의 온도보다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에 따라 익사한 아기 외계인의 가족이 로페즈에게 복수를 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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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뢰밍 통조림, 세계 최고의 악취…정체는?


스트뢰밍 통조림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스트뢰밍 통조림은 세계의 최고의 악취로 유명한데요. 스트뢰밍 통조림은 대체 무엇일가요?
 
스트뢰밍 stromming 생선이란 봄,가을 스웨덴 바다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생선입니다. 스웨덴 지방에서는 가장 제맛을 느낄수 있도록 장시간에 걸쳐 멸균 시키지 않은 것을 발효 시켜 캔 내부의 미생물이 가득차 부산물에 의해 캔의 중앙 부분이 부풀어 오릅니다.

스트뢰밍 통조림의 냄새는 한국의 삭은 홍어나 황석어 젓갈하고 흡사합니다. 지난 2월 방송된 '이경규의 복불복쇼'에서 방송된적이 있어 화제가 된적이 있습니다.  
 
스트뢰밍 통조림은 스웨덴 어느 슈퍼에서도 쉽게 구할수 있으며, 현지인들은 보통 빵과 삶은 감자, 양파, 토마토등을 곁들여서 샌드위치로 먹는다고 합니다.
 
한편 이 제품은 냄새가 너무 강해서 비행기를 통해서 기내 반입을 금지할 정도라고하니 악취가 어느정도일지 짐작이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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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국왕 등, 전 세계의 어린 지도자 Top10


부탄의 국왕은 만 29살로 전세계에서 가장 `어린 왕`입니다.

1위에 오른 부탄의 지그메 케사르 왕추크 국왕은 1980년생. 2006년 아버지로부터 왕좌를 물려받아 5대 왕에 올랐습니다. 부탄은 지난 3월 첫 총선을 거쳐 국회를 꾸리고 민주주의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국가 지도자로 왕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의 루스벨트 스커릿 총리는 37살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교육 장관으로 일하다 2004년 전임 총리가 심장마비로 숨져 후임으로 뽑혔다고 합니다.

3위에 오른 38살의 조셉 카빌라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도 전임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직위를 물려받은 경우인데요. 2001년 아버지인 로랑 카빌라 대통령이 경호원 손에 피살되면서 대통령직을 승계했습니다.

39살의 마케도니아의 니콜라 그루에프스키 총리는 4위를 차지했습니다. 아마추어 권투선수 출신으로 2003년부터 중도우파 성향의 국내혁명기구-민족연합민주당(VMRO-DPMNE)을 이끌었습니다. 당이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총리에 올랐습니다.

태평양 섬나라인 나우루의 마르쿠스 스티븐 대통령이 40살로 5위인데 특이하게도 올림픽 역도 메달리스트 출신이라고 합니다. 2003년 국회의원이 됐으며 2007년 전임 대통령이 불신임 투표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뒤를 이었습니다.

6번째는 남부 아프리카 스와질란드의 음스와티 국왕으로 41살입니다. 18번째 생일을 맞은 1968년 아버지인 선왕이 숨지면서 왕위를 승계했습니다.

42살인 미하일 사카쉬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인 `장미 혁명`을 이끌어 2004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뽑혔으며, 올해 1월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토고의 파우레 그나싱베 대통령과 불가리아의 세르게이 스타니세프 총리는 43살로 공동 8위에 올랐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후계자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44살로 10위를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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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목숨을 구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배후 조종했다며 `내란음모' 주동자로 몰려 사형이 확정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목숨을 건지는 데 당시 교황이 크게 기여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문서가 공개됐다고 합니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자료에 따르면 당시 교황인 고(故) 요한 바오로 2세는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 전 대통령의 감형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1980년 12월11일자로 보냈습니다.





   한편 감형 소식에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시 全 전 대통령 앞으로 같은 해 2월14일자 `교황 친서'를 보내 "각하께서 신속히 배려해 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리고자 한다. 각하께 최대의 경의를 표하며 훌륭한 한국 국민들에게 신의 가호와 은혜가 있기를 기원한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다시 징역 20년으로 감형되고 나서 1982년 형 집행정지를 받고 미국 망명길에 올랐으며, 1987년 사면.복권되고 대통령 임기를 마친 2003년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해 이듬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자료와 관련해 김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당시 국제 사회의 구명운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 김 전 대통령이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며 "구명운동에 교황청이 적극적으로 동참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자료"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연합뉴스에 의하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1980년 신군부가 정권 탈취 과정에서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이 `김대중 일당'의 내란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조작한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해 고(故) 문익환 목사와 이해찬 전 총리 등 당시 민주화 인사 24명이 연루돼 고초를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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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한권뿐인 책을 만든다

 -파주출판문화도시 활판공방


[출판 공방에서 인쇄된 한 시집. 신달자 시인의 <바람 멈추다>는 시집이다. 이 시집의 표지, 케이스, 이 책 머리에 들어 있는 자신의 사인, 책 끝에 있는 인지 ]

 세상에 딱 500권만이 출판된 시집을 내가 하나 가지게 된다면?  그리고 저자의 사인이 직접 들어가 있는 책을 내가 하나 가지게 된다면? 뿐만아니라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조판공의 손으로 하나 하나 제자, 선자, 식자되어 수공으로 만들어진 그런 책을 내가 하나 가지게 된다면?


이렇게 만들어지는 책들이 실제로 있다. 바로 파주출판단지 안에 있는 활판공방이 바로 그곳이다.  이 곳에서 출판되는 책들은 모두 이렇게 수공의 공정을 통하여 개별 책마다 저자의 사인이 들어가고  편집과 장정이 된다.

 특히 이 책들은 모두 한지로 인쇄가 된다고 한다. 이 한지는 천년이 간다고 하니 다른 종이가 수십년 지나면 퍼석퍼석해지고 종이가 노란 색깔로 변하는 것과는 대조가 된다. 닥나무를 가지고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지는 한지가 공장에서 대량으로 인쇄되는 종이와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책은 저마다 고유한 번호를 달고 나온다. 인지가 붙는 것이다. 거기에는 저자의 인장이 찍힌다. 이 인장이 없이 유통나면 큰 일이 난다. 사실 과거에는 모두 이렇게 인지제도가 있었다. 저자는 가끔 서점에 나가 자신의 책에 인지가 붙었는지 확인도 할 수 있었다. 출판된 부수가 인지대, 즉 저자의 수입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인지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라진 지금, 책 뒤에 붙은 붉은 인장이나 낙관이 콱 찍힌 인지를 보는 것은 참으로 새삼스럽고 신기한 일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오는 것이니  당연히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 이곳에서 출판하는 대부분의 책은 시집 종류라고 한다. 이 시집 한권이 5만원 정도라고 하니 일반 시중의 가격보다는 몇 배가 비싸다. 그러나 충분히 이 값을 치르고도 사볼 만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런 정도라면 가보로라도 소장할 가치가 있다. 좋은 사회는 일반 시민 누구나 사 볼 수 있는 대중적 문화와 더불어 조금은 사치스럽더라도 고급스런 문화도 함께 숨쉬는 곳이다.

 독일의 구텐베르크는 동양의 인쇄술을 가져가 대중적으로 활판인쇄를 통하여 성경을 대중적으로 찍어내는데 성공함으로써 근대 인쇄술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런 대중적 인쇄를 통하여 서양의 계몽시대를 여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이런 인쇄의 대중화와 더불어 온 인류가 지식을 익히고 공유하는데 엄청난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이전 시대에 제한적인 지식인 사이에만 읽혔지만 당대의 지혜와 지식을 기록하고 인쇄한 금속활자나 목판인쇄본 전적들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현대에서는 다시 개성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기만의 것, 아주 특별한 책들을 구하게 되는 경향도 생겼다. 사람들은 여전히 초판본, 명사들의 사인이 든 책들을 찾는다. 골동의 책들도 인기다. 이것은 대중화 시대에서도 특별함을 찾는 사람들의 심리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증명한다.

 이곳은 이미 사라져 버린 활판 인쇄기로 이렇게 한권 한권 책을 찍어내는 곳이다. 이 공방을 만들기 위해 사라져버린, 사라지고 있는 활판 인쇄기를 구하러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아름다운 법이다. 다시는 구할 수 없고 다시는 볼 수 없다면 그 자체로서도 귀한 것이 된다. 우리 주변에서 익숙한 것들이 너무 많이 사라지는 우리 시대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존하고 남기는 것 자체가 위대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여기에서 일하는 분들은 과거 인쇄소에서 이렇게 인쇄업무에 종사했던 분들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모두들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있는 연세 많은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다. 이 활판공방의 편집주간이자 시인인 박건한씨는 이 할아버지들이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될 때를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맥도날드나 피자집, 아니면 주유소에  가서 알바를 하지 이런 곳에 와서 이 조심스럽고 월급 적은 곳에 와서 일하겠냐는 것이다.

 이 활판 공방 밖에는 별도로 보존되고 있는 한 인쇄기가 있다. 바로 육남 최남선이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었다는 잡지 <소년>을 인쇄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인쇄기만 따로 모아놓은 인쇄박물관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청주에 있는 고인쇄박물관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곳에 인쇄시설이 제대로 모여있지는 못하다. 그런 가운데 비록 그것이 우리의 목판, 금속활자 인쇄기는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의 어려운 시대, 이 나라 지식인과 국민대중에게 지혜의 원천이 되었던 책들을 인쇄한 인쇄기들을 제대로 모은 박물관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박건한 편집주간이 지역을 돌아다니며 간신히 모아왔다는 이 몇개의 인쇄기 외에 좀 제대로 모은 인쇄기와 인쇄시설, 등 인쇄문화를 보여주는 그런 박물관 말이다.

(원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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